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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참여 =====
[[파일:Young Philip Jaisohn.jpg|thumb|left|120px|[[서재필]]]]
[[파일:Yunchiho1945.jpg|thumb|left|140px|[[윤치호]]<br>(윤치호는 친러파와 친일파로 변절한 그를 평생 경멸하였다.)]]
{{참고|독립협회|만민공동회}}
 
그는 독립협회장으로 활동할 무렵 [[만민공동회]]개최에 앞장섰으며 [[영은문]]을 허물고 [[독립문]]설립에 주도하여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가 독립협회 위원장을 맡았던 시절에는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지원하면서 가장 큰 후원자였으며, 독립협회의 실질적인 간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 등이 국민의 참정권을 주장하자 이들을 왕정을 타도하려는 위험한 세력이라 생각한 이완용은 곧 [[독립협회]]를 탈퇴하고 만다.
 
===== 친러파로 전향 =====
이 무렵 [[러시아 제국]]은 각종 이권을 요구하였고 [[독립협회]]가 이를 저지하고 반대하였는데, 이완용은 러시아 제국은 배격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호의를 가졌다. 예를 들자면 외무대신으로 재직하던 그는 서구열강세력들(주로 미국이다. 이완용은 주미공사 알렌과 친분이 두터웠다.)에게 많은 이권들을 넘겨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다. 반면, [[러시아 제국|러시아]]가 요구한 [[함경도]] 영흥·길주·삼수·단천의 금광 및 석탄채굴권을 거부했으며 러시아 군사교관 초빙 문제가 제기됐을 때에도 강력히 반대하였다. 이완용이 친미 반러(反露) 태도를 보이자,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대한제국 고종|고종]]에게 압력을 가하여 [[1897년]] [[7월 20일]] 외부대신 이완용을 학부대신으로, 또 [[9월 1일]]자로 평양 관찰사로 좌천시켜 중앙 정계에서 축출했다. 다음날, [[9월 2일]] 러시아 공사관 베베르의 후임으로 주한 러시아 공사에 취임한 스페에르는 고종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궁궐 경비병을 철수하겠다.”,“제2의 아관파천을 실행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미국인 헤링튼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스페에르는 이완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인용문2|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오. 나는 그의 이름에 표를 해 두었소. 그는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결코 벼슬을 얻지 못할 것이외다. 그는 언제나 독립을 외치는 친미(親美)그룹의 우두머리지요. 나는 그 그룹을 조선에서 없애버릴 작정이니, 그들은 더 이상 세력을 쓰지 못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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