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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립협회장으로 활동할 무렵 [[만민공동회]]개최에 앞장섰으며 [[영은문]]을 허물고 [[독립문]]설립에 주도하여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가 독립협회 위원장을 맡았던 시절에는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지원하면서 가장 큰 후원자였으며, 독립협회의 실질적인 간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 등이 국민의 참정권을 주장하자 이들을 왕정을 타도하려는 위험한 세력이라 생각한 이완용은 곧 [[독립협회]]를 탈퇴하고 만다.
 
[[협성회]]의 창립회원이자 동지의 한사람인 [[이승구]]는 이완용의 아들이었다. [[이승구]]의 아버지 [[이완용]]은, '자식이 이승만 패거리와 뭉쳐 다니는 것을 걱정'하여 [[미국]] [[캘리포니아]]의 무관학교로 유학을 보내<ref>이황직,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 (프로네시스(웅진), 2007) 90페이지</ref> 버렸다. 이후 [[윤치호]]와 [[이승만]]은 그를 경멸, 혐오하였다.
 
===== 친러파로 전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