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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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정보
|이름=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4세<br />Αλέξιος Δ' Άγγελος
|그림=Alexius4.jpg
|재위=[[1203년]] - [[1204년]]
|이전 황제=[[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3세]]
|다음 황제=[[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5세]]
|왕가=[[앙겔루스 왕조]]
|목록=[[비잔티움 황제 연대표#앙겔루스 왕조 (1185-1204)|비잔티움 황제]]
}}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4세 앙겔루스앙겔로스''' 또는 '''알렉시오스알렉시우스 4세 앙겔로스앙겔루스''' ([[그리스어]]:Αλέξιος Δ' Άγγελος, [[1182년]] – [[1204년]] [[2월 8일]])은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비잔티움의 황제]]로 [[1203년]] [[8월 1일]]부터 [[1204년]]까지 아버지 황제 [[이사키우스 2세]]와 함께 공동 황제였다. [[앙겔루스 왕조]]의 일원이다.
 
알렉시우스는알렉시오스는 [[이사키우스 2세]]와 이레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1195년]] 큰아버지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3세]]가 구테타를 일으켜 황위를 찬탈했을 때 감옥에 갇혔다. [[1201년]]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신성로마제국]]으로 망명하여 누나 [[이레네 앙겔루스]]의 남편인 매형 [[슈바벤의 필립]]에게 의탁하였다. 알렉시우스는알렉시오스는 그곳에서 [[제4차 십자군]]의 대표로 있던 [[몬페라토의 보니파치오]]를 만나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제위를 다시 되찾기 위해 협약을 맺었다.
 
그 제안에는 십자군이 자신의 큰 아버지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3세]]를 몰아내고 자신의 아버지의 제위를 되찾아 주면 십자군의 [[이집트]] 정복을 위한 병사 1만명과 [[기사 (군사)기사]] 500명을 제공하겠다고 하고 또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로마 가톨릭]]의 관할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제안은 십자군측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 (베네치아)|도제]] [[엔리코 단돌로]]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제4차 십자군]]은 이에 호응하여 목표를 이집트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전환하였다. 알렉시우스는알렉시오스는 [[1203년]] 4월 십자군과 합류하여 6월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했다.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였고 결국 십자군에 점령당했다.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3세는 도망치고 [[8월 1일]] 장님인 이사키우스 2세가 다시 황제에 복위했다. 십자군 점령군은 알렉시우스의알렉시오스의 약속을 담보하기 위해 젊은 알렉시우스도알렉시오스도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4세로 공동황제에 앉혔다.
 
그러나 알렉시우스는알렉시오스는 십자군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탐욕스러운 [[십자군|프랑크 군]]과 비잔티움 백성과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갔다. 또한 십자군에게 지급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매겼고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려는 알렉시우스의알렉시오스의 기도에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급기야 [[1204년]] [[1월 25일]] 수도에서는 쿠테타가 일어나 알렉시우스는알렉시오스는 지하감옥에 감금돠었다가 활줄에 교살되었다. 며칠후 눈먼 황제 이사키우스도 살해되었다.
 
비잔티움의 제위는 [[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5세|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두카스 무르주풀루스]]에게 돌아갔다.
 
 
{{전임후임
|전임자=[[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3세]]
|후임자=[[알렉시우스알렉시오스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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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1203년]] - [[12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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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183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