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극장: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
잔글편집 요약 없음 |
||
1번째 줄:
{{delete|저작권|url=http://www.google.co.kr/search?client=opera&rls=ko&q=%EB%8C%80%EB%8C%80%EC%A0%81%EC%9D%B8%EB%B3%B4%EC%88%98%EB%A5%BC+%ED%95%9C%EB%8B%A4.+%ED%95%98%EC%A7%80%EB%A7%8C+%EA%B7%BC%EB%8C%80+%EB%AC%B8%ED%99%94%EC%9C%A0%EC%82%B0%EC%9C%BC%EB%A1%9C+%EB%93%B1%EB%A1%9D+%EC%98%88%EA%B3%A0%EB%90%98%EC%9E%90%EB%A7%88%EC%9E%90+2005%EB%85%84+12%EC%9B%94+6%EC%9D%BC+%EC%B2%A0%EA%B1%B0%EB%90%98%EC%96%B4+%EC%82%AC%EB%9D%BC%EC%A7%80%EA%B2%8C+%EB%90%98%EC%96%B4+%EC%A7%80%EA%B8%88%EC%9D%80+%EC%A3%BC%EC%B0%A8%EC%9E%A5%EC%9C%BC%EB%A1%9C+%EC%82%AC%EC%9A%A9%EB%90%98%EA%B3%A0+%EC%9E%88%EB%8B%A4.&sourceid=opera&ie=utf-8&oe=utf-8&channel=suggest}}'''약초극장(若草劇場, 1935)'''
약초극장은 일본 자본에 의해 시작되었다. <br />
명치좌, 황금좌와 함께 같은 시기인 1935년에 세워 졌으며, <br /> 개관 당시 극장명은 약초(若草)극장 혹은 약초 동보 극장으로 불렸다.
위치를 초동(약초정)으로 잡았기 때문에 극장이름도 와까구사게끼(와까게끼, 약초좌)라 했다. <br />▼
동보라는 명칭은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동보영화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br />▼
▲위치를 초동(약초정)으로 잡았기 때문에 극장이름도 와까구사게끼(와까게끼, 약초좌)라 했다.
▲동보라는 명칭은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동보영화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당시 일본 영화사들의 국내 투자가 부분적으로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지 면적은 약 300평으로 도로면이 좁아 극장 전면을 대로에 접하게했다. <br />▼
건축연면적은 658평으로 철골철근 콘크리트 구조이며, 2개층의 관람석을 갖는 순수 영화관으로 계획되었다.<br />▼
▲대지 면적은 약 300평으로 도로면이 좁아 극장 전면을 대로에 접하게했다.
당시에는 영화상영과 공연물 등이 극장에 함께 선보였다.<br />▼
▲건축연면적은 658평으로 철골철근 콘크리트 구조이며, 2개층의 관람석을 갖는 순수 영화관으로 계획되었다.
약초극장은 석을 보유한 1,172 대형극장으로서, 한국영화사에서 끊임없이화제를 만들었던 공간이기도하다.<br />▼
▲당시에는 영화상영과 공연물 등이 극장에 함께 선보였다.
▲약초극장은 석을 보유한 1,172 대형극장으로서, 한국영화사에서 끊임없이화제를 만들었던 공간이기도하다.
해방 이후1946년, 지배인이던 홍찬이 극장을 인수하여 수도극장으로 명을 바꾸고
이후 단성사, 국도극장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극장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br />
1954년 12월 14일에는 국내 최초의 키스신이 나오는 영화 <운명의 손, 한형모 감독>이
개봉되어 당시 대중들은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된다.<br />
1955년 이후로는 외화 상영을 주로 하게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를 상영하게 된다.<br /> ▼
▲1955년 이후로는 외화 상영을 주로 하게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를 상영하게 된다.
그 후 수익악화로 1962년 4월 소유주가 바뀌게 되고 그해 9월13일 스카라 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 개관을 한다. ▼
▲그 후 수익악화로 1962년 4월 소유주가 바뀌게 되고 그해 9월13일 스카라 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 개관을 한다.<br />
90년대 초까지 대형상영관이라는 현대식 시설로 서울 10대 영화관으로 손꼽히기도 하였다.
또한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실시한 극장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br />
그후 2002년 12월에 의자를 전면 교체하고 좌석간 간격을 넓히는 등 대대적인보수를 한다.<br />▼
▲그후 2002년 12월에 의자를 전면 교체하고 좌석간 간격을 넓히는 등 대대적인보수를 한다.
하지만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되자마자 2005년 12월 6일 철거되어 사라지게 되어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ref>이근혜, <<일제강점기 근대 문화 공간 표현 특성에 관한 연구>> 경원대학교 일반대학원, 2008, p94-98</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