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요아힘 베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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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로마제국 ===
[[1666년]] 베커는 [[마인츠 대학교]]의 의학 강사로 취직할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대주교의 주치의가 되었다. 같은 해에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신성 로마 제국의 레오폴트 1세|레오폴트 1세]]의 수상이자 의전관인 [[진젠도르프 백작 알브레히트]]의 지원을 받아 그는 [[빈]]의 상업 고문관이 되었다. 그는 황제의 명으로 [[네덜란드]]로 떠나는 도중 ''Methodus Didactica''를 저술하였고, 이후 ''Regeln der Christlichen Bundesgenossenschaft'', ''Politischer Discurs von den eigentlichen Ursachen des Auf- und Abnehmens der Städte, Länder und Republiken''을 저술하였다. [[1669년]]에는 ''Physica subterrancea''를 저술하였고 같은 해 [[하나우]] 백작과 [[오리노코]]와 [[아마존 강]]의 영토를 식민지화하는 계획을 약조하였다. 그동안 그는 [[바이에른]] 선제후의 주치의를 맡기도 하였다. [[1670년]], 그는 다시 [[빈]]으로 불리어졌고불리었고 직조 공장의 설립 계획, 저지대 국가와 교역할 회사 설립에 대한 안,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을 이을 운하 건설안을 제안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바이에른으로 돌아왔다. 베커는 불완전한 상업 자문회와 취약한 교역로 등에 대해서 황제에게 건의하기도 하였다. [[1674년]] 구스타브스 아돌푸스 공작이 베커에게 그의 영지로 와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바로 다음해 베커는 빈으로 돌아와 바쁜 나날을 보냈다. 빈에서 그는 [[도나우 강]]의 모래를 [[금]]으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이에 대해서 ''Theses chemicae veritatem transmulationis metallorum evincentes''를 썼지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 영국 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