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니히스베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칼라닌그라드에서 역사 부분
1번째 줄:
{{다른 뜻}}
#REDIRECT [[칼리닌그라드]]
 
'''쾨니히스베르크'''({{llang|de|Königsberg}} {{소리|De-Königsberg.ogg}}, {{llang|lt|Karaliaučius}}, {{llang|nds|Königsbarg}}, {{llang|pl|Królewiec}})은 중세 시대부터 [[1945년]]까지 [[동프로이센]]의 수도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공습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으며, [[포츠담 협정]]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에 양도되었다. [[1946년]]에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서 '''[[칼라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러시아 [[칼라닌그라드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 역사 ==
본래는 발트계의 [[프로이센]]인의 땅이었다. [[1256년]] [[보헤미아]]의 왕 [[오타카르 2세]]의 권고로 [[튜튼 기사단]]에 의하여 [[쾨니히스베르크 성]](城)이 건설된 것이 이 도시의 시초였다. [[한자 동맹]]에 속한 도시가 되었고, [[1457년]] 튜튼 기사단의 본부가 세워졌으며, [[1525년]]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파일:Albertina.jpg|thumb|300px|알베르티나 대학교, 1900년경]]
[[1544년]] 프로이센의 알베르트 공에 의해 [[알베르티나 대학]]이 세워져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고, [[1701년]]에 이 도시에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諸候) 프리드리히 3세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로서 즉위식을 올렸다. 쾨니히스베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이 성립되어 수도가 [[베를린]]이 되기 전까지 수도였으며, 베를린으로 왕국의 수도가 이전한 뒤에도 역대 프로이센 왕들은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이 도시가 속한 [[동프로이센]]은 [[폴란드 회랑]](回廊)에 의해 독일 본토로부터 육로가 끊기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이 도시는 영국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때 역사적 건축 문화재 또한 많이 파괴되었다. 또한 [[1945년]]의 쾨니히스베르크 전투에 의해 도시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봄, [[1940년]] 37만 명이던 도시의 인구는 5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이들 [[독일인]] 주민들은 [[1948년]]까지 거의가 추방되었다.
 
{{토막글|독일}}
{{토막글|러시아}}
 
[[분류:동프로이센]]
[[분류:쾨니히스베르크]]
[[분류:칼라닌그라드]]
[[분류:독일-소비에트 연방 관계]]
 
[[en:Königs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