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애 단마르크 왕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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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그림=Alexandra of Denmark02.jpg
|작위=[[인도의 군주 배우자|인도 황후]]<br />[[영국의 군주 배우자|영국 왕비]]
|재위=[[1901년]] [[1월 22일]]~[[1910년]] [[5월 6일]]
|후임자=[[테크의 메리]]
|배우자=[[영국의 에드워드 7세]]
|왕가=혼전:[[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br />혼후:[[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아버지=[[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
|어머니=[[헤센카셀의 루이세]]
[[1844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덴마크 왕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크리스티안 9세]], 어머니는 [[헤센카셀의 루이세]]이다.사실 알렉산드라는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여왕]]과 부군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앨버트 공]]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며느리 감은 아니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의 문제 탓에 당시 덴마크를 비롯한 [[데인]](Dane) 지방과 [[프로이센]](Preußen)의 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 때 프로이센의 왕세자빈이 바로 두 부부의 장녀인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마리 루이즈|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은 그의 셋째 숙모 케임브리지 공작부인 (공작 부인은 알렉산드라의 외왕고모)의 끊임없는 추천으로 결국 16세의 알렉산드라를 "유일한 선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1863년]] 윈저 성에서 18세가 된 그녀와 장남 [[에드워드 7세|앨버트 에드워드 왕자]]를 결혼시켰다.
 
=== 결혼 생활 ===
호색가였던 [[에드워드 7세]]는 신혼 초기에는 아름다운 아내에게 반해 그녀와 깊은 사랑에 빠졌으나, 얼마 못 가 소원해졌다. 패션 리더에 지적이고 사교생활을 즐겼던 에드워드 7세와 달리 알렉산드라는 단순한 성격에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들과만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고, 20대부터 조금씩 귀가 먹기 시작해 사교계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못했다.그녀의 이러한 정신적, 신체적 특성은 재치 있는 여성을 좋아하는 남편과 관계가 틀어지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에드워드 7세의 무관심과 끊임없는 바람기 또한 이 같은 불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막내아들인 존 왕자가 태어날 즈음의 결혼 생활은 거의 파탄이 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그녀는 3남 3녀를 낳아 후계자의 탄생이라는 의무를 완수했다.
 
* [[웨일스의 메우드|노르웨이 왕비 메우드]]
* 알렉산더 존
{{Link FA|en}}
 
{{전임후임
|전임자=신설
[[분류:영국의 왕비]]
[[분류: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분류:코펜하겐 출신]]
 
{{Link FA|en}}
 
[[af:Alexandra van Denem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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