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베타 파르네세 디 파르마 공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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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왕비 ===
[[1714년]] [[12월 24일]] 전처와 사별한 펠리페 5세는 당시 스페인 궁정을 움직이던 알베로니 추기경, 우르시노스 부인 등의 주도로 엘리자베타와 결혼했다. 엘리자베타는 스페인식 이름인 이사벨 디 파르네시오로 불리게 되었고, 자신을 왕비로 만들어준 우르시노스 부인과 권력 다툼을 벌여 그녀를 스페인 궁정에서 쫓아냈다. 그녀는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인해 빼앗긴 스페인의 영토를 다시 찾아오려는 정치적 야심이 있었다. 이사벨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알베로니 추기경 등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된 사르데냐와 시칠리아 등을 점령했고, 이에 오스트리아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스페인에게 반격을 가했다. 이사벨은 이 전쟁에서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도 했으나 결국 스페인은 전쟁에서 패해 알베로니는 실각하고 추방되었다.
[[1724년]] 펠리페는 장남 루이스에게 양위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스페인의 루이스 1세|루이스 1세]]는 7개월만에 천연두로 죽고 펠리페는 다시 국왕으로 즉위했지만 실권을 잡은 것은 엘리자베타였다. 숙부 안토니오가 후사 없이 죽자 파르마 공작의 지위는 그녀가 낳은 아들 카를로스의 것이 되었다. [[1736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으로 파르마의 통치권은 [[프란츠 1세]]에게 돌아갔지만 카를로스는 대신 [[나폴리 왕국|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시칠리아]]를 받게 되었다. 펠리페 사후 왕위는 그의 넷째 아들 [[스페인의 페르난도 6세|페르난도]]가 이었으나 그는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병사했다. 이사벨은 염원하던 대로 장남 카를로스를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시켰고, 둘째 아들 펠리페 또한 파르마 공작이 되어 [[부르봉파르마 가문]] 창설했다. 펠리페의 딸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는 카를로스의 아들이자 사촌인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였고 이사벨은 다시 한 번 스페인과 파르마의 양 가문이 결합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 자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