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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十字架刑, {{llang|en|Crucifixion}})은 고대 로마의 사형 방법 중 하나로, 본래는 신[[아시리아]], [[페니키아]],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하던 처형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달리 실제 고대 로마에서 사용되던 십자가형은 처형 기구의 특성상 십자가 모양이 아닌 T자 모양이었다.
 
== 십자가형의 역사 ==
로마에서는 기원전 1세기 말, 식민지인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십자가형을 공식 채택하였는데, 처음에는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고통을 주는 가혹한 [[체벌]]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원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성격이 바뀐다. 실례로 [[70년]] [[티투스]] 장군은 [[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면서, 포로들을 매일 500명씩 십자가형에 처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 만한 공간과 나무 십자가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형수]]들이 많았다고 한다. 몰론 [[로마 제국]]이 [[예수|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으로 죽인 이유도 예수를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위협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십자가형과 성서고고학 ==
{{참고|예수의 십자가형}}
십자가형이 [[성서고고학]]을 통해 설명된 것은 [[1967년]] 이후이다.
 
십자가형의 처형 기구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땅에 박혀 고정된 세로축의 사각 나무 기둥과, 죄인의 손이나 팔목에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가로축의 이동 가능한 사각 나무 기둥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십자가형을 위하여 모든 도시에는 지반에 고정된 나무 기둥이 있어야 했다. 사형수는 가로축의 나무 기둥에 팔에 줄로 고정되어 못이 박히면,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세로축 나무 기둥 꼭대기에 얹혀졌다. (두 나무의 접합 부분에는 분리되지 않도록, 홈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발목을 세로 기둥에 고정시켜 못을 박는 것으로 처형식이 끝이 난다. 그 이후에는 [[중력]]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이 아래로 쳐지게 되며, 쳐진 몸이 [[횡격막]]을 압박하게 됨에 따라 [[질식]]사 한다고 추정되고 있다.
 
== 십자가형의 잔인성 ==
십자가형은 십자가 형틀에 못박혀 매달린 사형수가 [[근육경련]]과 [[질식]]현상으로 수 시간내에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여 고통스럽게 죽게 하는 공개처형이었다. 사형수들이 벌거벗겨진 상태 그러니까 겉옷과 [[속옷]]([[라틴어]]로는 [[튜닉]], [[헬라어]]로는 키톤이라고 하는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키톤을 속옷이라는 뜻의 단어로 사용했다.)이 강제로 벗겨져 [[팬티]]만 두른 상태에서 처형된다는 점([[루가 복음서]] 23:34), 자기가 못박힐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점(루가 23:26)도 십자가형의 잔인성을 말해준다. 그래서 로마사람들은 철학자 [[키케로]]가 "[[십자가]]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시민에게서, 그의 생각이나 [[눈 (해부학)|눈]], [[귀]]에서조차 아주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십자가형의 실제적인 집행뿐만 아니라 그것의 언급마저도 로마시민과 자유인에게는 합당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고 할 정도로 십자가형을 매우 혐오했다.<ref>그리고 십자가 형은 한 9시간 이상을 매달려 있어야 했는데 그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까마귀들이 와서 쪼이고 그다음에 나무에 있는 것이 긁혀서 심한 고통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예수 같은 경우에는 이미 채찍으로 약 40대 이상 맞은 경우라 더욱더 고통이 심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십자가 형을 당할때 군인들이 몰약 (즉 포도주)를 준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을 사양하고 십자가 형을 당했다. [http://www.jesuits.or.kr/~jesuits/bbs/view.php?id=sharing&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126 예수회 한국관구 강론과 단상, 우리의 신분증 - 십자가]</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