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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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티우스 분열 ===
교황 니콜라오는 불가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한편 [[필리오쿠에필리오케]](''Filioque'')라는 교리를 불가리아에 퍼뜨렸는데 이것은 ‘성자로부터’라는 뜻으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모두 발현한다는 내용이었다. 포티우스와 동방 교회는 이 교리를 [[이단]]으로 간주해 격노했고 [[867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의회를 열어 교황을 폐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교황은 [[로렌|로타링기아]]의 왕 [[로타르 2세]]의 이혼 문제로 [[신성로마제국의 루트비히 2세|황제 루트비히]]와 반목을 빚고 있었기 때문에 포티우스는 이를 이용해 필리오쿠에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교황을 폐위하고 파문해 버렸다. 루트비히는 로마로 진격했고 동로마 제국의 승인을 받은 황제가 되었다.
 
이 때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바르다스가 실각하고 [[바실리우스 1세|바실리우스]]가 무능한 황제 미카일 3세의 총애를 받았고 결국 미카일 3세도 바실리우스에게 암살 당하고 [[867년]] [[9월 24일]] 바실리우스가 새로이 황제가 되었는데 바실리우스는 포티우스를 즉각 해임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