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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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량'''(金元亮, 1589[[1589년]] ~1624 [[1624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며,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며, 학덕으로 추천되어 낭관과 사헌부의 직책을 역임했다. 그러나 교분이 두터웠던 이괄을 옹호하다가 [[김자점]]에 의해 탄핵받고 처형되었다. 사후 다시 복관되어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자는 명숙(明叔), 호는 미촌(村)․율촌(栗村). 시호는 강민(剛愍). 본관은 [[경주김씨]]이다.
 
[[율곡 이이]]의 학통을 받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광해군]] 때 여러 관직을 지낸뒤 1623년 인조반정 직전 이시백(李時白)의 권유로 반정 모의에 가담하였으나, 거사 당일에는 가담하지 않고 대전에서 인조를 맞이하는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논공행상에서 공신에 녹훈되자, 이후원(李厚源)과 함께 사양하였으나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