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 러시아 공사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사진 추가
Domimira (토론 | 기여)
역사 추가
14번째 줄:
'''구러시아공사관'''(舊러시아公使館)의 정확한 명칭은 [[러시아공사관]] 탑이다. [[러시아공사관]] 건물의 일부인 탑에 해당한다. [[러시아공사관]] 건물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경복궁]]과 [[경운궁]] 등 서울 4대문 안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동의 고지대에 입지했으며, 그 건물 규모나 대지 규모에서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공사관보다 컸다.
 
[[19세기]] 말 고종은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서양 세력을 이용하려 하였는데, 이 서양 국가 중에 [[러시아]]를 특히 중시했다. [[러시아공사관]]은 [[경운궁]]과 [[미국]]ㆍ [[영]]국 등 서양 국가의 공관 등이 집중적으로 위치한 정동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자리는 원래 [[경운궁덕수궁]]의 영역이었으며, 탑의 동북쪽 지하실이 [[경운궁덕수궁]]으로 연결되었다고도 한다.
 
== 역사 ==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후,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세자([[순종]])와 함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 때, 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을 잇는 지하의 비밀 통로로 이동하였으며, 이 통로는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큼 좁았던 관계로 긴박했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부른다.
러시아 공사관은 해방 후, 소련 공사관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서울시공개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