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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기 새로운 연구 ===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 연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인 [[에른스트 케제만]]과 보른캄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였다.<ref>김창선, 한국신학총서 8 21세기 신약성서 신학, 예영커뮤니케이션, 2004, p. 118</ref> 케제만은 옛 스승 불트만에 반대하여 초대 교회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들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도 하느님(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나사렛 예수’와 교회에 의해 선포되었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ref> P.J. 악트마이어, J. B. 그린, M. M. 톰슨,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04-9-25,84쪽. </ref> 따라서 이 시기는 소위 후기 ‘불트만 학파의 시기’로도 불리며,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선포 사이에 연속성이 강조되었다.<ref>서중석
{{인용문2|다른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독일]]의 [[루터교회]] 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년]]~[[1976년]])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루돌프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과 [[귄터 보른캄]] 등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였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이후 하느님(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가 된 예수는 이미 이 땅 위에서의 삶 속에서 부활 이후의 고양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고, 그 ‘발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ref>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8쪽</ref>}}
케제만은 옛 스승 불트만에 반대하여 초대 교회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들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도 하느님(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나사렛 예수’와 교회에 의해 선포되었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ref> P.J. 악트마이어, J. B. 그린, M. M. 톰슨,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04-9-25,84쪽. </ref> 따라서 이 시기는 소위 후기 ‘불트만 학파의 시기’로도 불리며,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선포 사이에 연속성이 강조되었다.<ref>서중석
, 《복음서의 예수와 공동체의 형태》, 이레서원, 2007-5-30, 270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