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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 예수 ===
[[예언자]](預言者) [[예수]]가 [[갈릴래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느님의 나라]]({{llang|el|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υ|바실레이아 투 테우}})와 하느님의 정의였다.<ref>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오 복음서]] 6:33).마태오 복음서의 평행본문이 즉, 내용이 비슷한 문장이 [[루가 복음서]] 12:31에도 나오는데, [[루가]]는 [[마태오]]와 달리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으라'고만 적음으로써,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를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드러낸다.</ref>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가 세상에 옴으로써 시작된 현재적 나라요([[루가 복음서]] 11:20), 앞으로 세상에 오게 될 미래적 나라이다.([[마태오 복음서]] 6:10) 다르게 표현하면, 복음서에 언급된 하느님 나라는 미래에 그 완전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바로 그러한 미래의 나라에 대한 소식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을 회개하게 한다.<ref name="장흥길신약윤리86">{{서적 인용|저자=장흥길|제목=신약성경윤리|출판사=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쪽=86|발행일자=2002-11-10}}</ref> 여기에서 말하는 "회개"는 단순한 유감 표명이 아니라 삶 전체의 진로 변경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서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구약의 선지자 [[요나]]처럼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친다.<ref>{{서적 인용|저자=하워드 클락 키이, 서중석 옮김|출판사=한국신학연구소|제목=신약성서 이해|발행일자=1990-12-5|쪽=134}}</ref>
{{인용문2|#[[팔레스타인]] 외부에서는 예수가 가르친‘하나님의 나라’가 하느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만 활동한 역사적 예수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종말론적인 가르침, 즉 마지막 때에 대한 가르침의 중심에 놓을 수 있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가 되면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동시에 심판하신다고 예수는 말한다.<ref>{{서적 인용 |저자=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제목=역사적 예수 |id=ISBN 9788985061292 |id=ISBN 9788985061292 |꺾쇠표=예|출판사=다산글방|쪽=352~353쪽}}</ref>
}}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가 세상에 옴으로써 시작된 현재적 나라요([[루가 복음서]] 11:20), 앞으로 세상에 오게 될 미래적 나라이다.([[마태오 복음서]] 6:10) 다르게 표현하면, 복음서에 언급된 하느님 나라는 미래에 그 완전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바로 그러한 미래의 나라에 대한 소식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을 회개하게 한다.<ref name="장흥길신약윤리86">{{서적 인용|저자=장흥길|제목=신약성경윤리|출판사=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쪽=86|발행일자=2002-11-10}}</ref> 여기에서 말하는 "회개"는 단순한 유감 표명이 아니라 삶 전체의 진로 변경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서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구약의 선지자 [[요나]]처럼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친다.<ref>{{서적 인용|저자=하워드 클락 키이, 서중석 옮김|출판사=한국신학연구소|제목=신약성서 이해|발행일자=1990-12-5|쪽=134}}</ref>
 
[[마르코 복음서]]에는 [[루가 복음서]]<ref>루가복음서 19:45-48 45. 예수께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쫓아내시며 46.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47. 예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는데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잡아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48. 그러나 백성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듣느라고 그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ref>, [[마태오 복음서]]와 더불어 예수의 성전정화사건이 나온다. [[예루살렘 성전]]은 [[제사장]], 환전상, [[가축]] 상인들이 결탁하여 민중들을 착취하는 구조적인 악이 행해지고 있었던 [[강도]]의 소굴이었는데, 예수는 [[예언자]]적인 분노로 [[상인]]들을 쫓아낸다. [[예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민중]]을 착취하는 구조적인 악에 분노하고 투쟁한 [[예언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하느님 나라는 억압 받으며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그런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시작하시는 새로운 역사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며 그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을 뜻한다.<ref>{{서적 인용|저자=하워드 클락 키이, 서중석 옮김|출판사=한국신학연구소|제목=신약성서 이해|발행일자=1990-12-5|쪽=133}}</ref><ref name="장흥길신약윤리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