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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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홍성사]]}}</ref>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그들보다 상위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몫을 가져간 후에도 과연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식량(물품)이 남아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농민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 [[프롤레타리아]]’(rural proletariat)로서, 떠돌이 일당 [[노동자]], 떠돌이 기술자, 산적 등이 해당했다. 이들은 이전에는 농민이었다가 경제적으로 몰락한 사람들로, 농민 계층과 정서가 통했으며,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농민보다 더 불안정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 또한 농민과 유사한 수준의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지방의 장인(匠人)이 있었다. 이들은 전 인구의 약 3에서 7퍼센트를 차지했고, 기본적인 농기구와 가재도구를 공급했다. 그중 특별한 기술을 보유한 일부는 도시 엘리트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수 있었지만, 대부분 장인의 고객은 최저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복음서]]는 나사렛 예수가 이러한 시골 장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ref>캐롤리안 오시에크, 앞의《신약의 사회적 상황》. 기독교문서선교회, 57~59쪽</ref>
[[File:Millais - Christus im Hause seiner Eltern.jpg|thumb|left|300px|''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존 에버트 밀라리스가 1850년에 그렸다. [[라파엘 전파]]의 그림들은 예수 생애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19세기의 관심을 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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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로 복음서에서 언급된 세리들은 지배자인 [[로마 제국]]을 위해 많은 [[세금]]을 거두어 같은 동족을 착취하는 로마 제국의 하수인 노릇으로 부자가 된 [[식민지]] 수탈 행위 때문에 동족들에게 경멸을 받은 자들이었다.<ref> [[루가 복음서]] 19장을 보면, 세관장 [[자캐오]]([[삭개오]])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집에 모시자, 사람들이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라고 수군거렸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세리들은 동족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정도로 착취를 심각하게 했었다. </ref><ref>{{인용문|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한글개역판에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라며 못마땅해 하였다.|[[루가 복음서]] 19:1~7 | [[공동번역]]}}</ref><ref>{{인용문|[[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인용문2|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 분의 일을 바칩니다.}}하고 기도하였다. |[[루가 복음서]] 18:11~12 | [[공동번역]]}}</ref><ref>{{인용문|바리사이파의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심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인용문2|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 된 노릇이오?}} 하고 물었다. |[[마르코 복음서]] 2:16 | [[공동번역]]}} </ref> 즉, [[로마 제국]]은 그들의 하수인인 [[식민지]] 세리들의 착취 행위로 부를 유지했던 것이다.<ref name="yks2005"/>
 
팔레스타인 사회의 최상위 계층은 도시 엘리트로, 전체 인구의 3퍼센트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신분은 팔레스타인이 [[헬라]]적으로 도시화된 것과, 약 50년 전에 [[헤로데 대왕]](헤로데스 1세)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결과로 얻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유대인]] 동족보다는 [[에돔]]({{llang|he|אֱדוֹם|Edom}})<ref>{{llang|la|Idumæa|[[이두매아]]}}/{{lang|la|Idumea|[[이두메아]]}}를 일컫는다.</ref>사람인 헤로데 왕과 로마 제국에게 많은 유익을 제공해야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수입은 주로 토지세에서 나왔고, 관료 계층을 이용해 농민을 착취하였다.<ref>캐롤리안 오시에크, 앞의《신약의 사회적 상황》. 기독교문서선교회, 59~61쪽</ref>
 
== 1세기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