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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도교'''(道教)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서, [[신선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cw}}[[오행]]{{.cw}}[[복서]]{{.cw}}[[무축]]{{.cw}}[[참위]]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道家)의 철학을 도입하고, 다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다.
도교는 크게 [[도교 경전]]으로서의 《[[도장 (도교)|도장]]》, [[도교 사원]]으로서의 [[도관]], 도교의 성직자 또는 전문적인 종교인으로서 [[도사]]{{.cw}}[[여도사]]의 체제를 갖춘 '''교단 도교'''(敎團道敎) 또는 '''성립 도교'''(成立道敎)와 이에서 벗어난 도교 단체 또는 도교 신앙을 통칭하는 '''민중 도교'''(民衆道敎)로 구분한다.
도교의 창시자는 [[오두미도]] 또는 [[천사도]]의 창시자인 [[후한]](25~220)시대의 [[장도릉]](34~156)으로 알려져 있다. "도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북위 (북조)|북위]](386~534)의 [[구겸지]](365-448)로, 구겸지는 도교를 집대성한 사람 또는 최초의 [[교단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ref name="글로벌-도교의 성립">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통치자인 [[황제 (전설)|황제]](黃帝)와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黃老思想) 또는 '''황로교'''(黃老教)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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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 도교와 민중 도교 ==
도교는 본래 [[민간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중국]]의 [[자연 종교]](自然宗敎)이다.
이 [[자연 종교]]로서의 도교는 후대에 [[종교]] 교단으로서의 체제와 조직을 갖추어 '''교단 도교'''(敎團道敎)가 되었다.
[[민중 도교]]는 매우 강한 [[주술성]]을 보이며, [[고타마 붓다]]{{.cw}}[[공자]]{{.cw}}[[관음보살]]{{.cw}}[[예수 그리스도]]{{.cw}}[[마호메트]]{{.cw}}[[관우]](關羽){{.cw}}[[토지신]] 등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을 토대로 형성된 [[보권]](寶卷) 계통의 성격을 띤 종교이다.
== 한국의 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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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 시대 ===
한반도로 도교가 전래된 첫 기록은 기원후 [[624년]]의 [[고구려]](BC c.37-AD 668) [[영류왕]](재위 618-642) 7년 때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영류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도교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고구려]]의 도교와 관련된 다른 기록으로는 [[643년]]과 [[650]]년의 기록이 있다. [[643년]]의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 2년에는 당시의 실권자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건의로 [[당나라]]에서 [[숙달]](叔達)을 포함한 도사 8명과 함께 《[[도덕경|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보냈다.
[[신라]](BC 57-AD 935)는 [[당나라]]와의 문물 교류가 활발하였으므로 도교가 상당히 유행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術聖母)를 일명 선도성모(仙桃聖母)라 하여 후세에 여선(女仙)으로 숭배한 일이 있으며, 국가의 제사에 [[오악신]](五岳神)을 받들어 어느 정도 도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는 기록은 있다. [[신라]] 말기의 [[김가기]](金可紀: ?~859){{.cw}}[[최치원]](崔致遠: 857~?) 등은 도교 혹은 [[신선사상]]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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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 {{글로벌|분류=도교|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도교/한국도교의 역사#한국도교의 역사〔개설〕|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도교 > 한국도교의 역사 > 한국도교의 역사〔개설〕]]}}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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