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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도교'''(道教)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서, [[신선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cw}}[[오행]]{{.cw}}[[복서]]{{.cw}}[[무축]]{{.cw}}[[참위]]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道家)의 철학을 도입하고, 다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도교/한국도교의 역사#한국도교의 역사〔개설〕|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도교 > 한국도교의 역사 > 한국도교의 역사〔개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도교는 하나인 [[도 (철학)|도]](道)의 세 가지 모습인 [[옥청]](玉清: [[원시천존]]){{.cw}}[[상청]](上清: [[영보천존]]){{.cw}}[[태청]](太清: [[도덕천존]])의 [[삼청]]([[:zh:三清|<span style="color: black">三清</span>]])을 [[최고신]]으로 하는 [[다신교]]이다.<ref name="道教全球資訊網"/> 경전으로는 도교 성전의 집성인 《[[도장 (책)|도장]](道藏)》이 있다. 도교의 신자를 '''도교인''' 또는 '''도교도'''라고 하며,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표로 하는 무리라는 뜻에서 '''우류'''(羽流)라고 하기도 한다. [[도사]](道士)는 도교의 전문적 종교가이며 여성 도사는 [[여관 (도교)|여관]](女冠)이라고 한다.
 
도교는 크게 [[도교 경전]]으로서의 《[[도장 (도교)|도장]]》, [[도교 사원]]으로서의 [[도관]], 도교의 성직자 또는 전문적인 종교인으로서 [[도사]]{{.cw}}[[여도사]]의 체제를 갖춘 '''교단 도교'''(敎團道敎) 또는 '''성립 도교'''(成立道敎)와 이에서 벗어난 도교 단체 또는 도교 신앙을 통칭하는 '''민중 도교'''(民衆道敎)로 구분한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현세이익적인 면도 있지만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교단 도교에 비해 민중 도교는 전적으로 현세이익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도교의 창시자는 [[오두미도]] 또는 [[천사도]]의 창시자인 [[후한]](25~220)시대의 [[장도릉]](34~156)으로 알려져 있다. "도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북위 (북조)|북위]](386~534)의 [[구겸지]](365-448)로, 구겸지는 도교를 집대성한 사람 또는 최초의 [[교단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ref name="글로벌-도교의 성립">[{{글로벌2|주소=http://donation.enc.daum.net/wikidonation/ency.do?vol=025&code=001008001000000000#001008001001001000 "|제목=도교의 성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통치자인 [[황제 (전설)|황제]](黃帝)와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黃老思想) 또는 '''황로교'''(黃老教)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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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 도교와 민중 도교 ==
도교는 본래 [[민간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중국]]의 [[자연 종교]](自然宗敎)이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도교는 [[정령 숭배]]를 기반으로 하여 [[신선 사상]](神仙思想)을 중심으로 삼고, 거기에 [[도가]](道家){{.cw}}[[역경|역]](易){{.cw}}[[음양오행]](陰陽五行){{.cw}}[[복서]](卜筮){{.cw}}[[참위]](讖緯){{.cw}}[[점성]](占星) 등의 사상 및 이론과 [[무격]](巫覡: [[무당]]과 [[박수]]) 신앙을 가미하고, 다시 그 위에 [[불교]]의 체제와 조직을 본떠 결합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주목적으로 하는 한편 [[장수|수]](壽: 장수){{.cw}}[[오복|복]](福: 오복){{.cw}}[[벼슬|록]](祿: 높은 벼슬)을 구하는 현세이익적인 [[자연 종교]]이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이 [[자연 종교]]로서의 도교는 후대에 [[종교]] 교단으로서의 체제와 조직을 갖추어 '''교단 도교'''(敎團道敎)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즉, [[도교 경전]]으로서의 《[[도장 (도교)|도장]](道藏)》, [[도교 사원]](寺院)으로서의 [[도관]](道觀), 도교의 성직자 또는 전문적인 종교인으로서 [[도사]](道士){{.cw}}[[여도사]](女道士)의 체제를 갖추어 [[성립적 종교|성립적(成立的) 종교]] 또는 [[교단적 종교]]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에 따라 도사들 간에 주장의 차이가 생겨나고 이에 따라 많은 분파(分派)가 생겼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1910년 경에는 중국에서 140여 개의 [[도교 종파]]가 있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이 종파 종교를 '''성립 도교'''(成立道敎) 또는 '''교단 도교'''(敎團道敎)라 부르고 이에서 벗어난 도교 및 그 집단을 '''민중 도교'''(民衆道敎)라고 부른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민중 도교]]는 매우 강한 [[주술성]]을 보이며, [[고타마 붓다]]{{.cw}}[[공자]]{{.cw}}[[관음보살]]{{.cw}}[[예수 그리스도]]{{.cw}}[[마호메트]]{{.cw}}[[관우]](關羽){{.cw}}[[토지신]] 등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을 토대로 형성된 [[보권]](寶卷) 계통의 성격을 띤 종교이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민중 도교]]에 속하는 분파 또는 단체로는 [[무위교]](無爲敎){{.cw}}[[원돈교]](圓頓敎){{.cw}}[[홍양교]](弘陽敎){{.cw}}[[선천교]](先天敎){{.cw}}[[구궁도]](九宮道){{.cw}}[[금단팔괘도]](金丹八卦道){{.cw}}[[일관도]](一貫道)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것은 전적으로 현세이익적이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 한국의 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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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 시대 ===
한반도로 도교가 전래된 첫 기록은 기원후 [[624년]]의 [[고구려]](BC c.37-AD 668) [[영류왕]](재위 618-642) 7년 때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영류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도교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요청하였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그러자 당나라에서는 [[천존상]](天尊像){{.cw}}[[도법]](道法)과 함께 [[도사]](道士)를 파견하였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파견된 도사는 노자(老子)의 도법을 강의하였는데 영류왕과 수천 명의 고구려인들이 강의를 들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이듬해인 [[625년]]에는 고구려에서 학인들이 당나라로 파견되어 [[불교]]와 도교의 교법을 배워왔다.
 
[[고구려]]의 도교와 관련된 다른 기록으로는 [[643년]]과 [[650]]년의 기록이 있다. [[643년]]의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 2년에는 당시의 실권자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건의로 [[당나라]]에서 [[숙달]](叔達)을 포함한 도사 8명과 함께 《[[도덕경|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보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고구려]] 조정에서는 한 [[사찰]]에 이들 파견된 도사들이 거처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불교 사원을 도교의 사원인 [[도관]](道觀)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650년]]의 [[고구려]] [[보장왕]] 9년에는 수도인 [[평양]]에 있던 [[반룡사]](盤龍寺)의 승려 [[보덕]](普德)이 [[고구려]]에서 국가적으로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경시하여 불교가 쇠퇴하자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며 [[백제]]로 옮겨가 [[전주]]에 [[경복사]](景福寺)를 세우고 [[열반종]]의 교의를 강론하였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열반종"/><ref name{{글로벌2|주소="글로벌-열반종">[http://donation.enc.daum.net/wikidonation/ency.do?vol=025&code=002004006000000000#002004006000002000 "|제목=열반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18일에 확인.}}</ref> 이와 같이 [[고구려]]에서는 일시적으로 도교를 매우 숭상하였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고구려]] 말기에 융성했던 도교는 《[[삼국유사]]》보장봉로조(寶藏奉老條)의 고려본기에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오두미도]]였는데, [[장도릉]]이 창시한 최초의 [[오두미도]]가 아니라 상당히 수정되고 발전된 형태의 것이었다.<ref name="글로벌-한국도교의 역사〔개설〕"/>
 
[[신라]](BC 57-AD 935)는 [[당나라]]와의 문물 교류가 활발하였으므로 도교가 상당히 유행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術聖母)를 일명 선도성모(仙桃聖母)라 하여 후세에 여선(女仙)으로 숭배한 일이 있으며, 국가의 제사에 [[오악신]](五岳神)을 받들어 어느 정도 도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는 기록은 있다. [[신라]] 말기의 [[김가기]](金可紀: ?~859){{.cw}}[[최치원]](崔致遠: 857~?) 등은 도교 혹은 [[신선사상]]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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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 {{글로벌|분류=도교|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도교/한국도교의 역사#한국도교의 역사〔개설〕|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도교 > 한국도교의 역사 > 한국도교의 역사〔개설〕]]}}
* {{글로벌|분류=도교}}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