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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mperial Dynasties in China 917 CE (Chinese).png|thumb|300px|오대십국시대의 오나라]]
'''오'''(吳, [[902년]] ~ [[937년]])는 중국 [[오대십국 시대]] 10국 중 하나로써 [[당나라]] 절도사 [[양행밀]](楊行密)이 양쯔 강 하류 [[금릉]](金陵; 현재의 [[난징]])을 중심으로 [[강소성]], [[안휘성]], [[강서성]]을 지배했던 나라이다. 강남의 풍부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으나, [[이변]](李昪)에 의해 제위를 찬탈당해 [[남당]]이 대신 들어서게 되었다. 국호가 오나라 였지만 춘추시대 [[오 (춘추)|오]](吳)나라와 삼국시대 [[손권]]의 [[오 (삼국)|오]](吳)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양오(楊吳)라 부르고, 이 명칭은 양(楊)씨가 지배한 오나라는 호칭이다. 또 다른 명칭은 남오(南吳), 회남(淮南)이란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 역사 ==
창시자 양행밀은 여주 합비(廬州 合肥;, 현재 안휘성 합비시)사람으로 당나라 말기 혼란 속에 처음엔 도둑이었다가 군에 들어가 세력을 규합하여 고향 노주를 점령하자 당나라는 회유책을 써서 그를 노주자사에 임명하였다. 그후 양행밀은 주위지역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892년]] [[양저우]](揚州)을 점령하여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 되었다.
 
이윽고 장강을 아우르는 중류지역을 제압하여 일대세력권을 쌓았다. 그후 남하하는 주전충(이때는 아직 [[후량 (오대)|후량]]을 건국하지 않았다)과 다툼을 벌였고, [[회하]](淮河)의 경계선을 확보하여 절강성을 근거지로 삼았던 [[오월]]과 [[소주]](蘇州)을 둘러싼 쟁탈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여 소주는 오월의 것이 되었다. 그래도 강대한 세력을 지녔기에 [[902년]]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오왕에 봉해졌다. 양행밀은 자립은 했어도 어디까지나 당나라의 신하로써의 입장을 관철하여 죽을 때까지 당나라의 원호(元號)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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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행밀의 힘의 원천은 도적무리들과 당나라의 잔존병을 모아서 편성한 흑운도(黑雲都)라고 불리는 친위군단에 있었다. 이 군대는 전신을 검은 갑옷으로 무장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양행밀은 이들을 데리고 반대 세력을 무찔렀으나 너무 이 군단을 의지한 결과 흑운도의 지휘관이었던 [[서온]](徐溫)과 장호(張顥)가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905년]] 양행밀이 죽자 장남 양악(楊渥)이 옹립되었다. 그 시기 강서번진을 파괴하고 영역을 남쪽까지 확대해서 [[초 (십국)|초]]에게서 악주(鄂州;, 현재의 [[무한]]), 악주(岳州;, 현재의 [[악양]])를 빼앗아 오의 최대판도을 이룩했다. 그러나 양악은 완전히 괴뢰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그는 괴뢰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908년]] 암살당하고, 동생 [[양융연]](楊隆演;, 본명은 양위(楊渭)이다)이 새로운 괴뢰황제로 옹립되었다.
 
그해 서온은 장호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918년]] 양융연을 오국왕으로 삼고, 자신은 [[태사]](太師)가 되었다. 다음해 양융연이 죽자 동생 [[양부]](楊溥)를 옹립하고 선양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으나, [[927년]] 서온은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