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킹만 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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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정보
|분쟁 = 통킹 만 사건
== 결과 ==
[[미국]]은 통킹 만 사건을 명분으로 [[베트남]]에 대해 공개적으로 군사 개입을 강화하게 된다. [[8월 7일]], 미 의회는 사실상 선전포고인 '[[통킹 만 결의]]'를 의결하였으며, [[1965년]] 2월부터는 [[B-52 폭격기]]를 동원한 북폭에 나섰고, 지상군도 파견되었다.
 
== 자작극 설에 대한 논란과 진실 ==
본래 미국가안보국은 [[8월 4일]] 두 번째 교전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한 때 사실이 아닌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1971년]] 6월 [[뉴욕 타임즈]]에 [[통킹만 사건]]의 두 번째 교전은 미국이 북베트남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것임을 시사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쓴 실 니항 기자는 7000 페이지에 달하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입수하고 통킹 만 사건의 두 번째 교전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뉴욕 타임즈가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2005년에도 뉴욕 타임즈는 로버트 한 요크 NSA 역사 연구관의 말을 인용하여 NSA의 중간간부들이 감청내용을 왜곡했고 정책결정자들은 허위보고에 근거해 폭격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통킹만 사건 자체가 '미국 자작극'의 대명사 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 요크의 보고서에는 막상 첫 번째 공격이 진실이 아니라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두 번째 공격이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주장도 없었다. 또한, 두 번재 공격에 대해서는 통신 감청기관인 NSA(군함의 후방에서 북베트남의 부선통신을 감청하는 기관)가 소나(어뢰공격 탐지기구) 담당 병사가 배의 프로펠러 소리를 착각하여 어뢰공격이 있었다고 보고하자(실제로 당시 함정의 승무원들은 공격이 있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취합했던 정보들을 잘 못 해석하여 생긴 오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파일:Tonkingunboats.jpg|thumb|left|280px|[[1964년]] [[8월 2일]]에 미국에서 촬영된 전쟁 장면]]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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