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녀 메리 (149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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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잉글랜드의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으며, 유아기를 무사히 보낸 아이들 가운데 가장 막내였다. 그녀는 [[리치먼드 궁전]]에서 태어났다. 그녀와 그녀의 오빠 [[잉글랜드의 헨리 8세|헨리 8세]]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절친한 사이였다. 나중에는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군함 ''[[메리 로즈]]''를 건조하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의 메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 가운데 하나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나중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되는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카스티야의 카를]]과 1507년 12월에 [[약혼]]하였다. 하지만, 유럽 열강 간에 정치 동맹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두 사람의 결혼식은 개최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토머스 울지|울지 추기경]]에 의해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게 됨에 따라 [[1514년]] [[10월 9일]] 열여덟 살의 메리는 [[아브빌]]에서 쉰두 살의 [[프랑스의 루이 12세|루이 12세]]와 결혼식을 올렸다. 프랑스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었던 전속 시녀 중에는 [[앤 볼린불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이전에 두 번이나 결혼했음에도 살아 있는 아들이 없었던 루이 12세는 이번 결혼을 통해서 상속자를 낳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1515년]] [[1월 1일]], 왕성한 성욕으로 소문났던 그는 침실에서 격심한 활동을 하다가 서거하였는데, 메리와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 명의 아이도 없었다.
 
서거한 루이의 뒤를 이어받은 새 국왕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프랑수아 1세]]는 미망인이 된 메리를 위해 그녀가 두 번째 결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