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Zorrobot (토론 | 기여)
잔글 r2.5.2) (로봇이 더함: no:Liu Biao
Wpcms2843 (토론 | 기여)
30번째 줄:
 
==인물 및 일화==
유표의 용모는 키가 8척에 달하고, 위엄이 있는 풍모였다고 한다. 유표는 정치를 잘 해 전란이 계속되어 토지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안전한 형주에 모여들게 되어 형주는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또 형주에 들어온 사람중에는 명사들이 있어, 형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유표는 학문을 장려하였고, [[송충]]이나 [[사마휘]] 등의 학자도 육성하게 되었다. 유표 자신도 유학자로서 당인(黨人)이었던 [[왕창 (후한)|왕창]](王暢)에게 사사하여, 젊을 적부터 유학자로서 알려져 “팔교”(八交) 혹은 “팔고”(八顧) 및 “팔우”(八友) 중 한 명에 뽑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표는 후계자 문제를 쉽게 결단내리지 못하여 훗날 그 사업이 그대로 조조에게 흡수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유표가 한숭으로 조조를 정탐하게 했는데, 한숭은 황제를 끼고 있는 조조를 만나게 되었다가 황제의 명을 받는 날에는 유표의 명령에 복종할 수 없게 되므로 거부했으나 유표는 기어이 한숭을 조조에게 보냈다. 돌아온 후 과연 한숭은 조조를 추켜올렸고, 유표는 한숭을 죽이려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또, [[감녕]]을 쓰지 않아 결국 감녕이 [[손권]]의 부하가 되어 자신 수하의 [[황조]]를 잃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