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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서인]]이었던 예학자 [[김장생]](金長生)은 그가 정여립의 옥사를 조작한 인물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김장생]]에 의하면 정철은 [[정여립의 옥사]]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문장의 추국관이 되기를 자청했다 한다.
 
[[김장생]]이 엮은 〈송강행록〉(松江行錄)에 의하면, 기축옥사 당시 [[정철]]의 행적을 의심하였다. [[김장생]]에 의하면 정여립 등이 모반한다는 고변이 있자 일반인은 그의 상경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정철은 그의 도망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자진하여 옥사처리를 담당했다는 것이다.<ref name="nate1">[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78525&v=44 정여립],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f> 이에 따라 그가 [[정여립]]의 도망을 미리 안 이유는 정철이 정여립의 유인과 암살을 지령한 음모의 최고지휘자일수도 있다{{출처}}<ref name="nate1"/>는 것이다. 한편 당시 위관은 [[유성룡]]으로 그와는 무관하다는 견해도 있다.<ref name="yu01"/>
 
[[기축옥사]] 당시 80명의 [[동인 (정치)|동인]]인사들을 체포하여 형문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1천여 명의 동인계열 인사와 가족들이 체포되어 형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서인의 영수로서 형문의 초기 책임자였던 그는 옥사를 확대시켰다는 비판을 받았고, 그에 대한 동인의 원한과 감정은 극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