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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치구'''(閔致久, [[1795년]]~[[1874년]])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척신으로 [[흥선대원군]]의 장인이며 [[여흥부대부인]]의 친정아버지이고, [[대한제국 고종|고종]], [[이재면]]의 외할아버지이다.
 
[[인현왕후]]의 생부 [[민유중]](閔維重)의 후손으로 [[인현왕후]]의 남동생 [[민진영]](閔鎭永)의 4대손이다. 관직은 [[보국숭록대부]] 판돈령부사에 이르렀으며 사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되었다. 본관은 여흥. 자는 경칙(敬則)이며 시호는 효헌(孝獻).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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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종|철종]] 때 연안부사를 지냈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C%97%AC%EC%9D%80%EB%B6%80%EC%9B%90%EA%B5%B0&keyword=%EC%97%AC%EC%9D%80%EB%B6%80%EC%9B%90%EA%B5%B0 :::::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그뒤 [[1857년]] [[인천]] 부사와 [[청주]] 목사를 거쳐 [[1863년]]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그해 [[12월]] 외손자인 고종이 즉위하자 공조 참의가 되었다가, 1864년 5월 종2품으로 승진하여 동돈령,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9월 한성부좌윤으로 나갔다가 그해 말 공조 판서에 특진되었다.
 
[[1865년]] 초 [[광주시|광주부]]유수로 나갔다가 그해 [[7월]] 숭정 대부로 승진했으며 [[1866년]]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가례 때는 가례를 주관하는 가례부사에 임명되었다. 그해 보국숭록대부로 승진, 뒤에 판의금부사, 행 지중추부사, 판돈령 부사를 역임하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1874년]] 폭탄 테러로 아들 주기 [[민승호]], 감고당 한산이씨와 함께 죽었으며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 가족 관계 ==
* 할아버지: [[민백술]]
* 아버지: [[민단현]](閔端顯), [[첨지]][[중추부]]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