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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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에 스페인 주재 청국 공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시 20세 연하의 아말리아를 만나 결혼한다.
 
그 후 부친의 병세가 위독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1883년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묄렌도르프]]의 초청으로 조선으로 와서 인천 해관에서 근무하다가 한 달도 못되어,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된다.
 
뮐렌도르프가 떠난 후에도 우리탕은 인천해관에서 오랜동안을 근무하다가 후에는 용산과 원산의 상무위원을 역임했고, 1890년에 은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