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오 일병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Zlovis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Zlovis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최영오 일병 사건은 1962년 7월 8일 오전 8시, '애인에게 온 편지를 뜯어보고 놀렸다'는 이유로 상급 병사 2명을 살해한 최영오 일병이 사형당한 사건을 말한다. 최영오 일병은 서울대 천문기상학과를 휴학하고 입대한 학보병 신분이었다. 각계 각층에서 구명운동이 벌어졌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1963년 [[3월 18일]] 오후 2시 40분, 서울 근교 수색의 형장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4163</ref>
최영오 일병의 사체 인수 통지서를 받아들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그날밤 11시 50분 쯤 서울 마포 근처 한강에 투신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