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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역사서 《왜사기(倭史記)》
* [[신경준]]의 《여암전서(旅庵全書)》
* [[이규경|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
* [[1923년]] 한글학자 [[권덕규|권덕규(權悳奎)]]가 쓰고 광문사(廣文社)에서 출판한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
 
우선 《왜사기》라는 문헌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헌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기록들을 살펴보면 비차가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인데, 신경준의 《여암전서》「책차제(策車制)」에 따르면 비차를 만든 사람은 김제 사람인 정평구(鄭平九)라는 인물로, 왜병에게 포위된 영남의 어느 읍성을 지키던 성주의 친한 지인이 이 비차를 만들어서 성 안으로 들어가, 친구를 태우고 30리 바깥으로 날아가서 지상에 착륙해 왜적의 칼날을 피하게 했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비거변증설(飛車辨證說)」에는 인조 때의 사람인 [[전주|전주부(全州府)]] 출신의 김시양(金時讓)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며, "[[충청도|호서(湖西)]]의 노성(魯城) 지방에 사는 윤달규(尹達圭)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윤증|명재(明齋)]]의 후손이다. 이 사람이 정밀하고 교묘한 기구를 만드는 재간이 있어 비거를 창안하여 기록하여 두었다."고 했다.
 
== 연구 및 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