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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南怡)가 [[남이의 옥|모역사건]]으로 몰리자 [[신숙주]], [[유자광]] 등과 함께 [[남이]], [[강순]] 등의 사형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남이]] 등이 처형된 후 [[유자광]], [[신숙주]] 등과 [[남이]], [[강순]]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추충보사병기정난익재공신(推忠保社炳기難翊載功臣)의 호를 받고는 [[1469년]](예종 1년)에 또 영의정이 되었다.
 
불편한 관계였던 [[조선 예종|예종]]이 갑자기 죽자 새 왕의 즉위시까지 정무를 맡아보는 [[원상 (관직)|원상]](院相)이 되어 서정(庶政)을 결재하였다. 이때도 병권에는 관심이 높아 병조판서를 겸하였고, 인사권까지 장악하였다.
 
==== 성종의 추대와 원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