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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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楊花津)까지 올라왔다가 돌아갔다.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하여 1만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그 뒤로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잘린 목은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며 한강물이 핏빛으로 변하였다고 전해진다.
 
[[1966년]]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천주교회에서 절두산순교기념관을 세웠다. 이는 2000년에 절두산순교박물관으로[[절두산순교박물관]]으로 개명했다. 이 곳에는 조선시대 때 박해로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으며,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 등이 있으며, 야외전시장에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신부의 동상과 순교자들의 묘와 비석 등이 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