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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에 시즌 타율 3할 7푼 7리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1986년에 [[랜디 바스]](한신)가 3할 8푼 9리를 기록하면서 기록 경신할 때까지 센트럴 리그의 기록으로 유지되었고 1989년에 [[워렌 크로마티]]가 경신(.378)할 때까지의 구단 기록이었다. 같은 해 시즌에서는 규정 타석 도달자에 의한 연간 삼진은 6개(424타석)를 기록하면서 최소 삼진 타이 기록도 달성했다.
 
1956년 5월 31일의 [[주니치 드래곤스|주니치]]전에서는 상대 투수 [[나카야마 도시타케]]로부터 일본 프로 야구 최초의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달성했는데 이 도달한 경기 수는 일본 프로 야구야구에서의 최고 속도 기록(1646경기)이며이자 1500안타의 도달도달한 경기 수는 1241경기이며1241경기이다. [[알렉스 라미레스]]의 1236경기, [[레론 리]]의 1237경기에 뒤를 이은 빠른 기록이며, 일본인으로서는 최고 속도 기록이다(미일 통산 기록에서는 모두 [[스즈키 이치로|이치로]]가 기록을 깼다). 1957년에는 1949년 이후 타율타율이 3할 대의 미만으로 끝나(8년 연속 타율 3할은 [[오 사다하루]]와 대등한 역대 2위 타이 기록), 다음해인 1958년은 “그 해에 타율 3할을 기록할 수 없으면 은퇴하겠다”라고 결심했지만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면서 4번 타자의 자리도 신인 선수인 [[나가시마 시게오]]에게 빼앗겨 시즌 후반부터는 6번으로 강등되었다. [[195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니시테쓰 라이온스]]에게 3승 4패로 패하면서 7차전 종료 직후에 현역 은퇴를 공식 표명했다. 현역 시절 말기에는 허리가 돌지 않게 되어 ‘'''텍사스의 데쓰'''’({{lang|ja|テキサスの哲}})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은퇴 후 1959년부터 친정팀의 코치로 부임했고, 1960년의 10월에는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이 방송국 카메라맨을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키면서 구단으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았고 가와카미는 대리 감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