롄장현 (중화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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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마쭈 섬의 옛 이름은 남간당(南竿塘)이다. [[송나라]] 때 마조(媽祖)로 개명되었다. 송나라 시대의때의 전승에 따르면 [[푸젠 성]] 흥화부 보전현 미주도에 임원지라는 어민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6녀 묵낭은 효심이 지극했고 매일 밤 해안에서 불을 피워 어선이 조난하는 것을 막아 섬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날 임원지가 조난당하자 묵낭은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나섰다. 결국 남간도에 표류한 시체를 찾아내어 현지의 사람들이 그 효심을 현창하고 묘를 세워 마조(媽祖)라 불렀다. 이 후 마조(馬祖)가 도서의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무인도였던 마조는 [[원나라]] 시대였던때였던 1277년부터 1367년까지에 걸쳐1277년에 [[푸젠 성|푸젠]]·[[저장 성|저장]] 연해의 어민들이 천연의 양항인 것을 발견했고, 악천 후 때의 피난 뿐만 아니라 식수의 공급도 가능해서 어민들의 피난항으로 이용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때에는 어민들이 정착해 촌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중화민국]] 수립 이후, 정부는 난간(南竿), 베이간(北竿), 둥취안(東犬), 시취안(西犬) 각 섬에 감창을 설치하고 어업 진흥 정책을 폈다. [[1934년]]에는 난간에 연보변사처를 설치했다. [[1937년]]에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지만, [[1945년]]에 일본군이 물러난 후 푸젠 해상보안총대 및 군대가 시취안에 주둔해 치안 유지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