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쿠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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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
== 가마쿠라 다이부쓰 ==
동조 아미타여래 좌상 (국보) - 높이 약 11미터. '''가마쿠라 대불'''로 친숙하다. 단순히 크기뿐만 아니라 [[가마쿠라 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조각으로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후세에 많은 보수가 행해진 [[나라 현|나라]](奈良)·[[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과 비교해 제작 당시의 모습을 거의 보존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각지고 평면적인 안면상, 낮은 육계(머리 부분에 혹처럼 살이 올라온 것이나 뼈가 튀어나온 것), 고양이 등처럼 약간 구부정한 자세,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다는 점 등에서 [[가마쿠라 시대]]에 유행했던 송풍(宋風) 불상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 관월당 ==
그 밖에 경내에는 [[도쿠가와 히데타다]](2대 [[쇼군]])가 소지하고 있었다는 성관음상을 안치한 관명당, [[요사노 아키코]](与謝野晶子)의「鎌倉やみほとけなれど釈迦牟尼は美男におわす夏木立かな」의 노래 비석 등이 있다.
관월당(觀月堂)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법당으로 이용되는 건물이다.
 
관월당은 조선왕실에서 금융담보로 조선척식은행에 제공한 것을, 이후 야마이치 증권의 설립자 스기노 기세이가 소유하고 있다가 1924년 고도쿠인에일본 기증했다.가나가와현 고도쿠인에서는카마쿠라시의 관음보살을사찰 모시는고도쿠인(高德院)에 법당으로 사용해 왔다기증하였다.
또한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반환이 추진되고 있는 경복궁에 있던 건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있다.
 
관월당은 정면 3칸에 맞배지붕을 올린 목조건축물으로 명성황후의 원당(願堂·기도하는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 건물 대부분은 훼손되어 시멘트를 덧칠했다.
관월당에는 무량수각(無量壽閣)란 현판이 걸려 있고, ‘신미년 봄 3, 4월경 정학교가 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학교(1832-1914)는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현판을 쓴 명필이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완료한 뒤인 1871년경 무량수각 현판을 썼으리라 추정된다. 무량수각은 ‘무량수경을 담아두던 각이라는 뜻으로, 경복궁 내 명성황후의 사설 법당인 원당(願堂)으로 추정되나 배불숭유 정책에 따라 1777년 정조가 사설 법당을 금지했기 때문에 정식의 궁궐 도면에는 관련된 전각의 이름이 없다. 경복궁내의 월궁전(月宮殿)을 옮긴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나 용도는 알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관월당은 조선왕실에서 금융담보로 조선척식은행에 제공한 것을, 이후 야마이치 증권의 설립자 스기노 기세이가 소유하고 있다가 1924년 고도쿠인에 기증했다. 고도쿠인에서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법당으로 사용해 왔다.
 
건물 대부분은 훼손되어 시멘트가 칠해진 상태이며, [[대한민국]]에서는 건물의 존재가 문화재위원 김정동 목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1997년 『일본을 걷는다』라는 책을 내면서 알려졌다. 현재 한국으로의 반환 추진중에 있다.
 
== 기타 ==
그 밖에 경내에는 [[도쿠가와 히데타다]](2대 [[쇼군]])가 소지하고 있었다는 성관음상을 안치한 관명당, [[요사노 아키코]](与謝野晶子)의「鎌倉やみほとけなれど釈迦牟尼は美男におわす夏木立かな」의 노래 비석 등이 있다.
 
== 교통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