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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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黃鶴亭)은 원래 광무 2년([[1898년]])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 회상전(會祥殿) 북쪽 담장 가까이 세웠던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었다. 청-일-러 3국의 3파전에 근심하던 고종황제는 이곳에서 활을 쏘며 피로를 풀었다.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사직공원]] 북쪽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건하였다.
 
황학정이 있는 사직동의 등과정 자리는 한말까지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등과정은 경복궁 서편 [[인왕산]] 기슭 옥동(玉洞)에 있던 등용정(登龍亭)· 삼청동의 운용정(雲龍亭)·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太極亭)·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白虎亭)과 함께 인왕산 아래 서촌(西村) 오사정(五射亭)이라고 불렸다. 오사정을 비롯한 서울에 있던 이름 있는 활터는 일제 때에 전통 무술을 금지하면서 점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