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보병사단 (대한민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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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대 연혁 ==
<br> 제 6 보병사단은 서기보병[[사단]]은 [[1948년]] [[4월 29일]] [[국방부]] 일반명령(육) 제 15 호에 의거, 경기당시 수색에서[[경기도]]였던 수색리(지금의 [[서울]] [[은평구]] [[수색]]동 일대)에서 제 4 여단으로[[여단]]으로 최초 창설창설하여 11월 20일에 제 6 여단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듬해인 [[1949년]] [[1월 15일]] 육본일반명령에 의거,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동년 11월 20일에 제 6 여단으로 개칭되었으며, 서기1949년 1월 15일 육본일반명령 제 15 호에 의거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으로 승격되자마자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였다가 [[6.25전쟁]] 직전에 당시 남북 분단선으로 춘천지역을 지나는 38도선을 지키게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방어전투]], [[용문산 전투]]등 전쟁기간동안 154여회의 대·소 전투에 참가하여 적 92,669명을 사살하고 6,437명을 생포하는 등의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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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남한 국군 사단들이 [[6.25전쟁]] 초기에 북한 인민군의 대대적인 기습공세에 밀려 엄청난 피해를 입어 후방으로 후퇴하면서 몇번씩의 재편과정으로 초기편제가 없어지는 등의 일을 겪었으나, 이 6사단만큼은 춘천방어에 성공하다가 서울지역이 함락되고 나서야 전선유지를 위하여 명령에 의한 어쩔수 없는 전술상 후퇴를 하게 되었기에 [[6.25전쟁]] 이전에 편성된 부대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도 초창기 편제를 유지해온 유일한 부대로서 긍지가 높다. 또한, 서울 수복 이후 북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치열한 격전지였던 [[압록강]] 물을 떠서 헌수한 것은 이 부대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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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보병사단은 서기 1949년 1월 강원 원주로 이동하였고, 휴전 이후에는 서기 1957년 3월부터 1963년 8월까지 강원 홍천 사창리, 경기도 현리로 이동하였다.
휴전 이후에는 [[1957년]] [[3월]]부터 [[1963년]] [[8월]]까지 강원도 [[홍천]] 사창리, 경기도 [[포천]] 현리로 이동하여 주둔하였고 [[1966년]] 현재 위치로 이동하여 155[[마일]] [[휴전선]] 중부지역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제 2 땅굴 발견 등 약 30여회의 대간첩작전을 통해 적 17명을 사살하고, 적 1명을 생포하는 등 전공을 올리고 있다.
제 6 보병사단은 서기 1966년 ○월 ○○일부로 ○○' 현 위치로 이동하여 ○○○ 지역 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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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보병사단 은 [[6.25전쟁]] 기간중 [[춘천 전투]]등 154여회의 대 ·소 전투에 참가하여 적 92,669명을 사살하고, 적 6,437명을 생포하였으며,
휴전 이후에는 25회의 대간첩작전을 통해 적 17명을 사살하고, 적 1명을 생포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 부대 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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