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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火田民)은 산에 불을 놓아 들풀과 잡목을 태운 뒤 그 곳에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화전농업|
(올랜이거 영어인데 발음을 이렇게 함 참고 한려영어짱 10단계 정말힘듬 내일 아침에 영어 대회에 가서 시험봄 우리 학교 대표로나감 저참고로 4학년임 잘보시오 이건 영어 발음을 적음 실체는 이게 아님 좀 틀림읽어보시오)보라 왓디드유드 레스트 위크 앤드? 아임 앤드 투더 주 아임써 멍키스 앤드 엘레펀트 제니 왓디드유드 레스트위크 앤드?아임 앤드 스케이팅아임 해드 어 그래이트 타임 왓디드유드 수니? 아임 헬프트 올드 피플 굿폴유 왓디드유드 폴? 아임 앤드 투더 뮤지앰 아임써 매니 픽쳘스 앤드 북스 데즈 사운즈 그래이트
==한국의 화전민==▼
1940년 경성제국대학의 위생조사부에서 낸 보고서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1926년에는 3만여호, 1931년에는 4만여호, 1935년에는 7만여호로 증가하였다. 1935년 이후로는 일제의 북선개척사업으로 화전민의 수가 감소하였다. 화전민의 토지 생산성은 극히 낮아 소작료도 이윤도 모두 성립하지 않았으며, 잉여생산물도 없이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정도만 수확하였다. 일제는 토지조사로 임야도 신고하게 하였으며 미신고된 토지는 국유화했으며 삼림령을 내려 화전민 박멸정책을 수행하였다. 화전민의 호구지책으로 행하는 삼림벌채로 매년 4천건에서 8천건이 입건되었다. 남한에서는 1968년 '화전정리법'으로 강원도 산간지방에 남아 있던 화전민을 다른 지방에 정착시키기 시작하여 1976년에 화전정리가 종결되었다.
[[ja:火田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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