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요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 바이트 추가됨 ,  10년 전
잔글
尉는 성으로는 '울'로 읽습니다.
잔글 (尉는 성으로는 '울'로 읽습니다.)
'''위료자울료자'''(尉繚子)는 중국 [[전국시대]]에 위료(尉繚)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여겨지는 병법서이다.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하나이다.
 
== 위료자의울료자의 위서설 ==
[[손자병법]], [[오자병법]]과 함께 옛날부터 평가가 높은 병법서였지만, 한편으로 방효유(方孝儒)가 엄혹가폭(酷苛暴)이라고 하는 평가가 있었다. 또 저자인 위료의울료의 정체와 생애에 대하고 여러가지 설이 있어서, 위료자가 전해지고 있는 판본의 경위가 판명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명나라]] 이후에는 위서라는 주장이 있었고, [[청나라]]의 요제항(姚際恒)에 의해서 위서라고 판정하고는 요제항의 판단이 통설이 되었다.
 
[[1972년]] 산동성 임기현 은작산(山東省 臨沂縣 銀雀山)에 전한시대의 무덤에무덤에서 출토한 병법서 뭉치안에 위료자의울료자의 사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전국시대부터 늦어도 [[진나라]](秦) 시대에 걸친 저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미발견된 병법서안에 위료자와울료자와 동일한 내용의 문장이 발견된 일로부터 후세까지 문장이 첨가된 부분도 존재하는 일도 맞추어 판명되었다.
 
== 저작자 ==
위료자가울료자가 서장부터 위료울료(尉繚)가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럼 위료가울료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이지 않고, 여러가지 설이 있어 판별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위료가 어떤 인물이었다는 설이다.
* 제나라 사람으로 [[귀곡자]](鬼谷子)의 문인이었다고 하는 설.
* 위나라 사람으로 [[위 혜왕]](魏惠王)의 신하였다고 하는 설(본문에 혜왕과 위료의 대화가 등장한다.).
* 위나라 사람으로 [[상앙]](商鞅)의 학문을 배운 후에 진시황제의 신하가 되어 진나라 포위망을 깨트리는 계책을 진언하였다고 하고, 진시황의 잔인함을 보고 떠나는 것을 결의한다. 하지만, 진시황의 요청에 의해 그대로 진나라의 장군이 되었다(사기의 설).
 
== 내용과 사상 ==
위료자울료자 저작 이전에 유포된 병법서인 [[손자병법]], [[오자병법]] 외에 [[맹자]], [[한비자]], [[상군서]]등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후세 사람들이 위서라고 주장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반대로 위료자가울료자가 그전의 선인의 학설을 통합하여 보다 나은 고도의 군사, 정치 이론을 구축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적극적인 평가도 있다. 위료가울료가 유파를 이어 받은 문인에 의뢰하여 가필을 상정하는 견해도 있다.
 
자국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실시하는 군사 행동을 어렵게 비난하는 한편으로, 대의명분이 있는 싸움이라면 선제공격도 어쩔 수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
 
== 구성 ==
위료자는울료자는 전체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경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