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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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결혼과 사회 활동 ===
1939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ref name="kuk0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65261 <nowiki>[</nowiki>안경희씨는 누구인가<nowiki>]</nowiki> 仁村家 맏며느리…조용한 내조·검소로 한평생] 국민일보 2001년 07월 16일자</ref> 이후 경북여고와 효성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뒤 24세 때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시아버지 김상만은 안씨의 검소함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에서는 안씨가 종손인 남편 김명예회장을 도와 가업을 이어가는데 뒤에서 보이지 않게 정성을 기울였다고 전했다.<ref name="kuk01"/> 명문가의 맏며느리라는 부담과 의무, 제약에도 그는 일절 불평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대외활동은 시아버지의 아호를 따 지난 94년 설립된 일민(一民)문화재단의 이사와 미술관장을 지낸 것.고인의 고미술에 대한 조예는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kuk01"/>
 
=== 세무 조사와 투신 자살 ===
[[동아일보]] 세무조사 과정에서 그의 투신자살을 놓고 보수 세력은 권력에 대한 항거로 해석했다. [[동아일보]] 명예회장을 지낸 남편 [[김병관]]은 "내자(안경희 씨를 지칭)는 핍박받는 동아일보와 남편을 대신해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내자 안경희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ref name="omay0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1427 "안 여사는 권력에 죽음으로 항거"] 오마이뉴스 2002년 07월 15일자</ref>"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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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빈소에는 [[전두환]], [[김영삼]] 전직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리 등이 방문하기도 했다.<ref name="dd02"> [http://news.donga.com/3//20010716/7715445/1 <nowiki>[</nowiki>故안경희여사 빈소표정<nowiki>]</nowiki> "어떻게 이런일이…나라가 걱정"] 동아일보 2001-07-16일자</ref> [[김영삼]]은 조위록에 나라의 將來(장래)를 생각하면서 金泳三 이라고 쓰고 헌화한 뒤 접객실로 자리를 옮겨 남편 [[김병관]] 명예회장을 만나 허,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나라가 걱정이다 라며 안타까워했다. 5분쯤 후 이회창 총재가 빈소에 도착, 조문을 한 뒤 접객실에서 김 전 대통령과 조우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며 오랜만입니다 라고 인사했다.
 
[[이회창]]은 고인의 인품이 훌륭하셔서 저희 집사람과 가족들이 참 좋아했다 고 말했고, 김 전 대통령은 인촌(仁村) 선생과 김 명예회장의 선친께서 며느리 사랑이 참 깊으셨다. 불행한 일로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ref name="dd02"/>라고 평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분향 후 김 명예회장 부부와는 인연이 깊다. "안 여사는 참 인품이 훌륭하고, 겸손하고 예의바른 분이었다 고 고인을 회고했다." [[전두환]]은 이어 '김 명예회장은 죽을 때까지 울음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마라. 여사께서 많은 분들을 대신해서 돌아가신 것 같다. 침착하고 당당하게 일을 수습하라' 고 당부했다.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은 최흥순(崔興洵) 비서관을 대신 보내 조의를 표했다.<ref name="dd02"/>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