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쉐 요새 함락"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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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요새는 카옌(Cayenne)의 섬 해안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벽위에 능숙한 프랑스 기술자의 솜씨로 지어진 요새였다. 그러나 2월 18일 프랑스인들과 영국인들은 항복권고를 받았고 2일후에 슈발리에 데 포테나(Chavalier de Fontenay)는 항복을 결정하였고 결국 330명의 해적을 포함한 500명의 사람이 억류되어 포로가 되었다. 데 퐁테나(de Fontenay)와 티바우(Tibaut) 마르틴(Martin) 이 지휘하는 2척의 배를 탄 이들은 프랑스로 항해해 가는 것을 허락받았으나 두명의 지휘관은 인질로 억류되었다. 에스파냐 군은 요새와 해안포대에서 70문의 포를 노획하였고 세척의 함선과 프리킷, 그리고 8척의 작은 배를 전리품으로 얻었다. 이들 에스파냐 군은 아일랜드인 머피(Murphy)로 하여금 150명의 주둔군을 이끌고 요새를 지키게 하여 간신히 얻은 승리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 결과 ==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로 실려간 죄수들은 에스파냐의 대규모 농장에서 노예가 되었다. 에스파냐군이 요새를 버렸을 것이라고 기대한 3척의 해적선이 8월에 귀환하였으나 이미 수비병이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영국군이 [[1654년]] [[9월 13일]] 영국 군이 히스파니올라를 공격게 되자 에스파냐 총독은 레알 케둘라(real cédula)를 발행하여 요새를 포기하고 [[라토티 섬|토르투가]]에서 퇴각할 것을 명했다. 이에 토르투가는 [[자메이카]]의 군사령관으로서 활동한 윌리엄 브라인(William Brayne) 대령으로부터 명령을 전달받은 엘리아스 와트(Elias Watts) 휘하의 영국인과 프랑스 인으로 구성된 친입자들에게 의해 탈환되었고 와트는 토르투가의 사실상 총독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 참고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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