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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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한 때 [[대한민국 국회의사당|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시민회관과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특별시]]의 [[서울특별시의회|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
 
경성에 대규모 공연장이 없던 1930년대 초 경성부가 부민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경성전기주식회사로부터 100만 원을 기부받아 1934년에 준공한 부립극장이다.
 
연건평 5,676㎡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다목적 회관으로서, 1,800석의 관람석과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대강당을 비롯해 중강당·소강당 등에서 연극·음악·무용·영화 등을 공연하였다.
 
그 밖에 담화실·집회실·특별실·식당·이발실 등 부대시설도 잘 갖추고 있어서 극단들의 창단공연, 유명 연극단체들의 공연을 비롯해 중요 강연회 등이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945년 7월 24일에는 강윤국·조문기 등이 동아시아 각국 괴뢰들이 부민관에서 일제에 충성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행사장인 부민관을 폭파했다.
 
8·15광복 뒤 미군이 접수해 임시 사용하다 1949년 서울시 소유가 되었고, 1950년 4월 29일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국립극장으로 지정되었다.
 
1950년 서울 수복 뒤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됨에 따라 시민회관으로, 1976년 세종문화회관 건립과 동시에 그 별관으로 이용되었고,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1991년부터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부민관 [府民館 ] | 네이버 백과사전
 
 
부민관터는 본래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경성전기회사]]는 서울의 전기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댓가로 50만원을 납부하였다. 그 돈을 바탕으로 경성부의 부민들을 위하여 5,600여 제곱미터의 규모의 다목적 강당을 지어 문화공연장으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