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포로수용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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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제76포로수용소의 공산포로들은 수용소장인 [[미국 육군]] [[F.T.도드]] 준장을 납치하고, 그 석방 조건으로 포로들에 대한 처우 개선, 자유 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 방침 철회, 포로의 심사 중지, 포로의 대표위원단 인정 등을 제시하였다. 이 폭동은 [[낙동강 전선]]에서 [[미국 1 기병사단]]에 항복했던 [[이학구]]가 주도했다. 이들은 미군의 심사를 거부하고 대립하다 미군이 발포하자 70여 명이 죽고 14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미군과 반공포로, 공산포로들이 맞부딪힌 가운데 난동 포로 50여 명이 살해되었다.
공산포로들은 그들에 대한 고문·폭행·학대 등을 거부하며 평양으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그해 6월 20일을 기하여 전 포로수용소에서 일제히 봉기하여 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리지웨이의 뒤를 이어 새로 국제연합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마크 클라크]] 대장은 이와 같은 사건을 막기 위하여 포로의 분산 수용을 결정하고 [[H. L. 보트너]] 준장을 포로수용소장으로 임명하였다. 6월 7∼10일에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공산포로들이 경비병에 반항하다가 1명이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재차
== 주요 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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