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의 교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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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아테네]]에서도 [[스파르타]]와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한 신생아를 내다 버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와는 다르게 아테네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의 생사를 결정하였다. 건강한 어린아이는 가정에서 유모, 보모, 어머니에 의해 양육되었다.
 
초기의 [[아테네]]에서 자유민은 7세가 되면 파이다고고스(paidagogos)의 지도를 받으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체조학교[gymnasiumpalaistra]에서 체육을, 그리고 음악학교[didas caleum]에서 음악을 배웠다. 신체교육은 체계적인 신체훈련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교화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음악교육은 인간에게 정서적 조화와 리듬을 주어서 아름다움과 선함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음악교사에게는 음악의 기예를 습득하게 하는 교육과 더불어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교육도 과제로 부여되었다.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교육방법에서 시를 짓는 일이 높이 평가되었다.
 
이러한 교육은 법률로 제정되어 강요되거나 국가적으로 통제되지 않았다. 체육관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경기를 벌이며, 국가의 제사의식과 같은 종교적 축제에서 윤무에 참여하는 것 등은 모두 명예스러운 시민의 의무에 속하는 것이었다. 청소년들을 학교에 보내 배우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자유로운 교육열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이에 따르는 비용도 부모가 지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