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히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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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초]] 10년([[160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고쇼(大御所)로 물러나고 센히메의 아버지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2대 쇼군으로 취임하였다.
 
[[게이초]] 19년([[1614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이 결별하면서 [[오사카 전투]]가 발발하였다. 게이초 19년의 오사카 겨울 전투(大坂冬の陣), 게이초 20년의 오사카 여름 전투(大坂夏の陣)를 거치면서 패배한 도요토미 가문은 당주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히데요리의 생모 요도도노가 함께 자살하면서 멸망하였으나 센히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구출되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측실 사이에서 출생한 [[나아히메]](奈阿姫)가 처형당할 위기에 놓이자 센히메는 나아히메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구하기도 하였다. 나아히메는 덴슈니(天秀尼)라는 법명을 받고 불문에 귀의한 뒤 [[1645년]] 36세로 자녀 없이 요절하여 도요토미 가문은 단절되었다.
 
=== 혼다 다다토키와의 재혼 ===
[[1616년]] [[혼다 다다카쓰]](本多忠勝)의 손자인 [[혼다 다다토키]](本多忠刻)와 재혼하였고, 몇 년 후 남편을 따라 [[히메지 성]](姫路城)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남매(가쓰히메(勝姫)와 고치요(幸千代))가 태어나는 등 금슬도 좋았지만, 아들 고치요가 세 살의 나이로 죽고 [[1626년]] 재혼한 남편도 죽자 불교에 입문하여 '''덴주인(天樹院)'''이란 법명을 받고 [[에도]]에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 기타주석, 참고문헌 ==
 
전남편이자 이종사촌인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서녀 [[나아히메]]를 양녀로 입양하여 양육했다. 그러나 [[나아히메]]는 [[1645년]] 36세의 나이로 병사한다.
== 함께 보기 ==
* [[도요토미 히데요리]]
 
{{토막글|일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