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히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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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다 다다토키와의 재혼 ===
[[겐나]] 2년([[1616년]]) 쿠와나 번(桑名藩)의 번주이자 [[혼다 다다카쓰]](本多忠勝)의 손자인 [[혼다 다다토키]](本多忠刻)와 재혼하였고, 동시에 화장비 명목으로 남편을10만 따라석의 [[히메지영지를 성]](姫路城)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받았다. 사람 사이에쓰와노 남매(가쓰히메(勝姫津和野藩)의 번주인 사카자키 고치요나오모리(幸千代)坂崎直盛)가 태어나는쿠와나 번으로 금슬도향하는 좋았지만,센히메의 아들혼례 고치요가행렬을 덮쳐 살의센히메의 나이로가마를 죽고탈취하려는 [[1626년]]계획을 재혼한세웠다가 남편도발각당하여 죽자사카자키 불교에나오모리는 입문하여자살하고 '''덴주인사카자키 가문은 개역(天樹院改易)'''이란 법명을처분을 받고당하는 [[에도]]에센히메 돌아와 여생을사건(千姫事件)이 마쳤다발생하였다.
 
이듬해인 [[겐나]] 3년 혼다 가문이 하리마(播磨) 히메지(姫路)로 영지가 변경되면서 남편 혼다 다다토키와 함께 [[8월 28일]] [[히메지 성]](姫路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혼다 다다토키와 센히메 사이에는 남매(가쓰히메(勝姫)와 고치요(幸千代))가 태어나는 등 금슬도 좋았지만, 아들 고치요가 세 살의 나이로 죽고 [[1626년]] 재혼한 남편도 죽자 불교에 입문하여 '''덴주인(天樹院)'''이란 법명을 받고 [[에도]]에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 주석,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