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노키 마사시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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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토가와 신사
: 구스노키 마사시게를 주신으로 모신 신사로 그의 아들 마사쓰라 및 미나토 강 전투에서 전사한 일족 16인과 기쿠치 다케요시(菊池武吉)의 제를 지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마사시게의 부인 히사코의 신령도 합사하였다.) 신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72년]](메이지 5년)의 일로 그 전에는 [[미토 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도쿠가와 미쓰쿠니(德川光圀)]]가 세운 「오호충신남자지묘(嗚呼忠臣楠子之墓)」라 새긴 마사시게의 묘비가 있었다. 미나토가와 강 전투에서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일족들과일족과 함께 자결한 장소와 묘소 모두가 신사 부지내에 있다.(단, 자결한 장소에 대해서는 이설도 있지만, 미나토 강의 싸움에서 패한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아우 마사스에와 함께 칠생보국(七生報國), 즉 "일곱 번을 다시 환생한다 해도 천황을 위해 적을 섬멸하여 국가에 보답하겠노라"는 맹세를 한 뒤, 지금의 미나토가와 신사의 북쪽에 있던 광엄사(廣嚴寺)의 탑두에서 함께 서로를 찔러 자결했다고 한다.(지금 광엄사의 본당에는 마사시게와 그 일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이바라키성(茨木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