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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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 [[1977년]] [[11월 22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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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는 [[대한민국]]에 최초로 세워진 [[감리교]] [[교회]]이다. [[덕수궁]] 옆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정동길 44 ([[정동 (서울)|정동]] 34-3)번지에 있다. 흔히 '''정동교회'''로도 지칭되며, '''정동감리교회'''라고도 부른다.
 
[[File:Jeongdong First Church.JPG|thumb|공사중인 정동제일교회 예배당]]
 
== 역사 ==
=== 설립 ===
정동제일교회는 [[조선]] 말기인 [[1885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이다.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10월 11일]]에 정동에 있는 자신의 사택에서 한국인 감리교 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한 것을 정동제일교회의 시초로 삼고 있다. 감리교단의 대표격으로 여러 분야에서 "한국 최초" 기록을 보유하면서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 문화적 가치 ===
정동제일교회의 벧엘예배당은 [[1897년]]에 건축되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개신교]] 교회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도 [[1918년]]에 이 교회에 봉헌되었으며, 정동성가대는 한국의 개신교 음악 문화를 선도했다. [[1887년]]에 설립된 정동부인병원은 한국 최초의 [[어린이]]와 [[부녀자]] 전용 [[병원]]이다. 정동에는 초기 [[개신교]] 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설립되어 [[개화기]] 신교육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다.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으며, 개화기에 많은 음악가를 배출하였다.
 
=== 역사적 공헌 ===
정동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는 [[아펜젤러]]선교사가 맡았고, [[1902년]]에 제4대 담임[[목사]]로 [[최병헌]] 목사가 부임하면서 한국인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제5대 [[현순]], 제6대 [[손정도]], 제7대 [[이필주]] 담임목사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다. [[1919년]]에는 담임목사 이필주와 전도사 [[박동완]]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면서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도 정동교회 신자였다.
 
한국의 개화운동을 이끌었던 [[윤치호]]는 정동교회의 장로로 시무하였다. 그는 [[105인 사건]] 후 친일성향을 보였으며, 경성 [[YMCA]]의 총무와 회장을 역임하였다.
 
== 바깥 고리 ==
*[http://chungdong.onmam.com/ 정동제일교회 홈페이지]
 
== 참고자료 ==
* {{웹 인용
|url=http://chungdong.onmam.com/sub/?mCod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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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기 ==
* [[새문안교회]]
 
{{서울의 랜드마크}}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