푀양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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푀양파는 원래는 자코뱅파에 속하면서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던 그룹으로 프랑스 혁명을 계속 주도해 왔지만, 《[[바렌느 사건]]》의 대응을 놓고 공화파가 대두했던 [[자코뱅 클럽]]에서 [[1791년]] [[7월 16일]] 탈퇴하여 갈라졌다.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파이고 《[[프랑스 인권 선언|인권 선언]]》의 정신을 준수하지만, 왕권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귀족, 우파, 부르주아 계층, 온건파의 집단이었다. 주요 구성원으로 [[라파예트]], [[바르나브]], [[라메트]], [[시에이에스시에예스]], [[바이이]] 등이 꼽힌다. 라파예트파나 [[삼두파]] 등 혁명 초기에는 대립했던 사람도 모여 있었던 것이 특징이다.
 
[[1791년]] [[10월 1일]] 성립된 입법부에서는 우파 세력 의원 264명으로 구성되어, 공화정을 주장하는 좌파 세력의 [[자코뱅파]]([[지롱드파]] 포함) 136명과 충돌했다. 푀양파가 중심이 되어 입헌 의회에서 제정한 [[입헌군주제]]를 정권으로 하는 《[[1791년 헌법]]》의 유지를 주장하며 혁명의 진정을 노력했지만, [[샹 드 마르스 학살]]의 후유증으로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