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 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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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그림= Brooklyn Museum - Miran Shah.jpg
|그림제목= 미란 샤의 초상. 브루클린 박물관이 소장 중.
|출생일= [[1366년]]
|출생지=
|사망지= [[사르드루드]]
|사망일= [[1408년]] [[4월 16일]]?
|사망원인= 전사
|거주지=
|국적= [[티무르 왕조]]
|별명=
|학력=
|직업=
|종교= [[이슬람교]]
|배우자= [[세빈 벡]]
|자녀= 아바 바크르, 우마르, [[할릴 술탄]]
|부모= [[티무르]]
|친척=
|서명=
|웹사이트=
}}
 
'''미란 샤''' (1366년 - 1408년 4월 16일?, [[페르시아어]]: میران شاہ) 은 [[티무르]]의 아들로, 티무르가 살아 있을 때 [[아제르바이잔]]과 [[이라크]]를 분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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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복자는 미란 샤가 임지의 세금 기피자들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거절하고, 중요한 요새인 알린자를 잘라이르 왕조에 빼앗긴 것에 격노했다. 1399년, 티무르는 조카 술레이만 샤에게 군대를 줘, 아들 미란 샤를 자신에게 데려오라 명령했다. 하지만 술레이만 샤가 이끈 군대가 그의 아버지에게 돌아가 버린 탓에 그는 통치권을 내려놓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4년 후 티무르가 직접 개입하고서야 끝이 났는데, 티무르는 미란 샤의 친구들과 조언자들은 처형당했다.
 
미란 샤는 낙마 사고 이후 성격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믿어진 탓에 티무르의 후계자에서 제외되었다. 1405년, 티무르가 죽자 그의 아들 아부아바 바크르는 잘라이르 왕조의 군대를 타브리즈에서 밀어내고, 미란 샤 자신은 아제르바이잔을 다시 장악했다. 동시에 미란 샤는 아들 [[할릴 술탄]]이 [[티무르 왕조]]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지원했다.
 
그는 아부아바 바크르와 함께 할릴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으나, [[카라 유수프]]가 이끄는 [[흑양조]]의 위협 때문에 철군할 수 밖에 없었다. 1406년 아부아바 바크르는 [[나히체반]]에서 패배하고 1408년, 사르드루드에서 또 패배했으며 이때 미란 샤도 전사했다.
 
하지만 미란 샤의 왕통은 티무르 제국의 역사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손자 [[아부 사이드 (티무르 왕조)|아부 사이드]]는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일어나 제국을 복원하는데 애썼다. 아부 사이드는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의 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