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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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억류설 ===
임해군의 자녀들은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 일본에 억류돼 승려가 되거나 일본 장수의 부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당시 억류된 왕족은 광해군과 순화군<ref>선조실록 31권, 선조 25년 10월 19일, 경성판관 이홍업이 가져온 가토의 편지에서도 '''두 왕자와 관원들에 대해서만 언급되고 왕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실제로 왕손을 잡았다면, 편지의 목적상 왕손도 볼모로 잡았다고 언급할만한도 한데, 서신에는 왕자들의 내용밖에 없다. 또한 가토의 편지 외에도 북병사(北兵使) 한극함(韓克諴), 남병사(南兵使) 이영(李瑛),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 순화군(順和君) 이보(李),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 김귀영(金貴榮), 장계 부원군(長溪府院君) 황정욱(黃廷彧), 전 호군(護軍) 황혁(黃赫)등이 포로 상태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왕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ref>이며 이후 언급 자체가 전혀 없으므로 자녀 억류설은 사실성이 없다.<ref>이후 인조 실록에서인조실록에서 광해군의 죄악상에 관련한 부분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으므로 사실무근한 날조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가토의 공적을 부풀리는 야사에 근거한다고 본다.</ref>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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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574년 태어남]]
[[분류:1609년 죽음]]
[[분류:사형된 사람]]
[[분류:사법살인으로 사형된 사람]]
[[분류:광해군]]
[[분류:사형된암살된 사람]]
 
[[ja:臨海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