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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4월에는 [[대한제국]]의 관측소기사(觀測所技師)로 임명되었다. 한국의 관측 기구를 연구하여 [[측우기]]를 세계 최초의 우량계로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하였고,<ref>[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4/12/16/200412160500075/200412160500075_1.html 측우기를 중국에서 발명?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동아닷컴》, 2004.12.</ref> 학술보고서를 통하여 [[첨성대]]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소개하였다.<ref>[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4/2009092400584.html 서울교대 이용복 교수, “첨성대, 천문대일 가능성 높아”], 《조선닷컴》, 2009.9.24.</ref>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부]] 관측소 기사로 활동하였고, 이 시기에 조선의 옛 관측기록들을 찾아내어 정리하는 등, 조선의 과학에 대한 연구를 남겼다.
 
[[분류:<del><ref></ref></del>]]€〈†〉== 해류 연구 ==
[[1893년]] 일본 농상무성(農商務省) 수산조사소의 수산조사위원회 회원으로서 해류병에 의해 일본 근해의 해류를 조사할 것을 제안하여, 1893 ~ 95년에 해류병을 놓아 [[오야시오 해류|오야시오]], [[구로시오 해류|구로시오]]의 상태를 조사하였고, 이것이 일본 최초의 과학적인 해류 조사였다. [[1913년]]부터는 [[오오사카]] [[마이니치 신문|마이니치 신문사]]의 후원을 받아 대규모의 해류병을 이용한 해양 조사를 실시, [[1917년]]까지 13,357개의 병을 투입하여 그 중 2,990개가 회수되었다. 이 조사에 의해 일본 근해의 해류의 대체적인 형세가 명확해졌다. 조사 보고는 와다가 작성하였으나,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고, [[1922년]]에 '일본환해 해류조사업적(日本環海海流調査業績)'으로서 출판되었다. '북서태평양 월별 평균수원분포도'도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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