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쿠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Kimjae20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Buraket101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13번째 줄:
그녀는 [[비다쓰 천황]]의 증손녀이자 [[조메이 천황]]의 황후(배우자)였다. 그들은 세 아이를 두었는데 나카노오에 황자([[덴지 천황]]), 오아마 황자([[덴무 천황]]) 그리고 하시히토 황녀([[고토쿠 천황]]의 황후)가 그들이다.
 
그녀의 첫 재위기간은 4년으로, 소가 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다. 아들 나카노오에 황자가 그녀의 왕좌 앞에서 [[소가노 이루카]]를 처형한 것에 충격을 받아 양위하였다. 그녀의 뒤를 이은 [[고토쿠 천황]]이 죽었지만, 황태자인 나카노오에([[덴지 천황]])가 어머니를 '''사이메이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즉위시키고 자신은 황태자로 남아 정치를 이끌었다. 그녀의 두 번째 치세기간 중 한국의한반도의 [[백제]]가 멸망하였다. ([[660년]]) 일본은 백제의 왕실을 도왔는데 이전의 백제 영토를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661년 사이메이는 혼슈 야마토 지방의 수도에서 육해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세토 내해]]를 가로질러서 서진하였다. 천황은 이요 지방의 이시유 임시궁에서 머물어렀는데머물렀는데 오늘날의 도고 온센이다. 5월 그녀는 [[규슈]] 쓰쿠시 지방의 북부에 위치한 아사쿠라 궁에 도달하였는데 그곳은 현재 [[후쿠오카 현]]이다. 일본-백제부흥세력 백제 연맹군은연합군은 신라와의 전쟁을 준비하였으나 661년 7월 그녀가 아사쿠라 궁에서 군대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사망하였다. 그녀의 장례식은 11월 나니와 주(오사카)로 옮겨져 치러졌다.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사망하면서사망하고 한반도로 파병한 병력은 백제에백제 부흥 세력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신라군에게 몰살에 가까운 참패를 당함으로 인하여 결국 백제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참고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