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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자의 이름 盾은 '돈'으로 읽습니다.
민비 암살의 국내 협력자로 [[유길준]]과 [[흥선대원군]]이 지목되었다. [[윤치호]]는 그의 일기에서 그를 암살한 일본 낭인들의 지휘자 중 한사람으로 [[유길준]]을 지목하였다.<ref name="만찬">윤치호 <윤치호 일기(1916-1943)> (윤치호, 김상태 편 번역, 역사비평사, 2007)585페이지</ref> 명성왕후가 암살당할 무렵 [[윤치호]]는 [[유길준]]과 일본인 이시즈카가 사건의 전말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을 그날의 저녁 식사에 자신을 초대했다는 것이다.<ref name="만찬"/> 유길준은 대원군이 명성왕후 암살의 조선 측 주동자라고 지목하였다.<ref name="정용화">정용화, <문명의 정치사상: 유길준과 근대한국> (정용화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4) 93페이지</ref> [[1894년]] 가을 명성왕후가 [[개혁가|개화당]]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꾸몄다가 대원군의 첩보망에 발각되었고, '대원군은 일본 공사 오카모토와 협의 끝에 일본인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얻어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ref name="정용화"/>
 
미국인 스승 모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길준은 명성왕후 암살은 실행되었지만 대원군이 명성왕후 암살 문제를 일본공사와 협의하고 일본측에 약간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정용화"/> 그러나 [[유길준]]은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ref name="정용화"/> 사학자이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2대 대통령인 [[박은식]]도 [[흥선대원군]]을 명성황후 암살의 배후로 지목하였다. [[박은식]]은 [[춘추전국시대]]에 [[조순 (중국 사람)|조순조돈]](趙盾)이 왕을 암살한 것을 비유하여 이와 다를바 없다고 평가하였으며 감정이 사람의 양심을 가린다며 비판하였다.<ref>박은식, 《[[한국통사]]》(김승일 역, 범우사. 1997) 193쪽. </ref>
 
[[흥선대원군]]과 [[유길준]] 외에도 조선국 국군 1대대장 [[우범선]](禹範善)·2대대장 [[이두황]](李斗璜)·3대대장 이진호(李軫鎬) 등과, 전 [[군부]]협판 이주회(李周會), 국왕 친위대 부위(副尉) 윤석우(尹錫禹), 일본공사관 통역관 박선(朴銑), 문신 [[구연수]](具然壽) 등이 협력했고, 궁궐수비대의 구식군대 출신 조선인 병사들도 자발적으로 협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