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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 연대 활동 및 국제적 연대 활동을 이끌어내었다. 8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남북이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연대 활동의 결과로, 유엔인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ILO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연달아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미국, EU,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이어졌다.<ref name="박희"/>
2000년 12월에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전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법정은 여성들의 힘으로 연 민중 법정으로서 성노예 제도의 '가해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ref name="박희"/>
 
2001년 7월, <전쟁과 여성인권센터>가 정대협 병설기구로 발족하였다. <전쟁과 여성인권센터>는 "지금도 세계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성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점을 교육해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인권을 소중히 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바로 평화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성매매]] 피해 여성들, 기지촌 피해 여성들 등에게도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전쟁의 속성과 평화의 참된 의미에 대한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전쟁과 여성인권센터>의 노력과 할머니들의 평화에 대한 소망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2011년 8월, ‘희망의 문 열기’ 행사를 가지고 서울 마포구 성미산 부지에 개관을 준비 중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고 미래 세대에 평화의 참된 뜻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의 종자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으로 마련된 것인데,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일에 누구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인류 역사에 이와 같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육하고자 박물관 건립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것이다.<ref name="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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